멈춤, 그리고?

눈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해도 해와 달은 항상 있는 것처럼

by 코코넛


8년 전까지,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보다는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고집했었다.

전업 사진가도 아니면서 왜 이상한 고집을 부렸었는지

지금도 그 까닭을 정확히 모르겠다.

카메라로 열심히 연작을 찍은? 사진이

<멈춤, 그리고>라는 이름의 사진이었다.


빨간색 신호등에 걸려서 잠시 멈추었을 때,

그때마다 사진을 찍었었다. 빨간 신호등과 멈춘 지역과

그날의 날씨가 고스란히 클라우드의 폴더에 하나 가득

담겨있다. 아마도 1년 이상 이미지를 채집했었다.

가끔 폴더를 열어 사진을 다시 감상하면,

그 시간들이 이랬구나 하는 생각과 찍을 땐 몰랐는데,

낮달이 찍힌 것들도 간혹 만났다.


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봤을 때 간혹 봤던 낮달

밤에 보는 달은 당연지사로 여기고

낮달은 특별하게 여긴 까닭은 아마도 내가

그 낮달이 반가워서 시적으로 바라보았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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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신호등이라 멈춘 순간에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그렇다. 난 그때부터 난 멈춤을 즐거워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멈춘 것뿐 아니라 강제성을 띤 멈춤에서도,

마음으로 여유로움이 깃들고, 눈이 반짝였다.

섬세하고 편안한 눈길로 주변을 바라보게 해 주어서

그 순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이미지가 많음을 알았고,

같은 듯 다른 풍경이 매일 반복적으로 오가는 길에도

산재했다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장면들과의 조우는

발견의 기쁨과 설렘의 기억으로 스며든다.

아 이런 장면과 만난 것은 천운이야

혹은 어떻게 이런 장면이 이런 곳에서 나타날까?

감탄의 부사와 기쁨의 형용사들이

서로의 최상급을 향해 직조된 짧은 시퀀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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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칼로 손쉽게 깔 수 있는 굴과 같아서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공언한 그 신사는

당연히 거두었어야 할 자기 몫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칼로 굴 까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두 껍질 조개를

타자기로 열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열두 개의 생굴이 이런 식으로 열리기를 기다리고 싶은가?”


- 오헨리의 단편 식탁을 찾아온 봄에서 발췌


그런 아름다운 기억이 있음에도

요즘은 잠시 멈추어 주변을 살피는 일이

칼로 굴을 까는 것처럼 쉽지는 않았다.

마치, 모든 관심은 지속되지 않고,

한 시절로 끝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빨간 신호등에 걸려 멈추었을 때

핸드폰으로라도 사진을 찍는 행위가 사라졌음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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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그리고>를 위해 사진을 찍던 일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니,

빨간 신호등에 걸렸을 때조차 난 쉬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는 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즉, 멈추라는 신호에서 자동차는 브레이크를 밟고 멈추었지만,

머리와 손과 이성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일을 했었던 것이다.


<쉼>은 휴식을 통한 충전이라 모두에게 필요하고,

인간적이고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쉼>이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쉬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투리 시간까지도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아내 읽거나 보려고 하는 행위의 뒷면은

삶이 팍팍하고 힘들게 이어져 왔다는 증표다.

현재, 활자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불편해서 견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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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가졌다.

그 이유는 <멍 때리기 대회>가 생긴 것을 알아서다.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멍 때리기>라는 문화가 생겼을 것이다.

불멍, 물멍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동지들이 곳곳에 많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이상한 성격이라고

몰아가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보증수표 같은 역할을 한다.


“래글스의 영혼을 무지막지하게 짓누르고

시인다운 환상을 가로막는 것은

장난감에 흠뻑 배어있는 도료처럼

사람들에게 흠뻑 배어있는 듯한

절대적인 이기주의 정신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혐오스럽고

건방진 자만심에 젖어 있는 괴물 같았다.”


-오헨리의 단편 뉴욕사람의 탄생에서 발췌


오늘도 쉬는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뺑이친다는 말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빼곡한 일정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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