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가 찾던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참 사람을 찾아다녔다.

by 코코넛

나는 어떤 사람인가? 현재 만족한 삶인가?

정신적인 행복과 물리적 행복 중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가?


로비스 코린트의 < 디오게네스 >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 한 점을 감상하다

시작된 질문? 아니면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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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를 여러 마리 본 날이라, 날개에는 시맥이 많고 투명한 막상이라, 투명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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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배경설명을 잠시 하면,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으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를 본 제자 한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무엇을 그리 찾고 계십니까?"

"사람을 찾고 있다네"

"인적이 드문 산중도 아니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사람을 찾다니요?"

의아해하는 제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많아도 정직한 사람은 드므네.

통 그런 사람을 볼 수없으니 이렇게 등불을 들고 다니면 보일까 하고 말이네.

나는 참 사람을 찾는 것일세!"


그림의 소재는 참사람을 찾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일상에서 사용한 단어의 빈도수로 내 상태를 파악해 보았다.


올여름에 내 입에서 나온 단어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빈도 높았던 단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안타깝게도 <덥다>라는 단어가 아닐까? 추론한다.

만약,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이 <덥다>라는 단어를 정말 가장 많이 사용했다면

올해의 여름이, 얼마나 삭막한 생활이었고, 무기력한 일상이었는지,

알려주는 지표일 수 있다.

매일매일의 삶이 활기차고 싱싱한 일상이었다고 인지하는

내 기억과의 불일치인 이 지표를 보고 주춤, 멈칫, 허공에서 초점이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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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습관 덕분에 어떤 생각이 나의 하루를 채웠는지는 알고 있었다.

일기는 삶의 지도라고 생각했다.

써놓지 않으면 생각했던 단어들은 잊히고 감정은 증발해서

그날을 설명하려 하면 토막 뉴스처럼 짧게 짧게 끊어지고,

신나고 재미있었던 하루 역시 다음날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시도했을 때

실제 시간의 십 분의 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일주일 후 혹은 한 달 후에 그날의 기억을 설명한다고 가정하면

십 분의 일이 아니라 백 분의 일만큼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믿음이 만든 습관이었다.


그렇지만 글과 말은 다르기에,

말은 인지 현상과 훨씬 밀접할 수도 있기에,

가장 가까운 기억인 올여름에 내가 사용했던 단어들을 살핀 날이다.


”당신은 간소한 수입으로 파리에서 생활한다는 걸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하지만 당신 생각과 달라. 샤넬을 입지 않아도 얼마든지 깔끔하게 입을 수 있어.

꼭 개선문 근처나 포슈거리 같은 데를 가야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 중에 재미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재미있는 사람들은 대개 돈이 없거든.

나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됐어.

화가나 작가, 학생들, 프랑스인, 영국인, 미국인 등 말이야.

그런 사람들이 엘리엇 씨가 어울리는 꼴사나운 후작 부인이나

코가 긴 공작부인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걸, 이사벨도 알게 될 거야.

당신은 머리도 좋고 유머 감각도 있잖아.

그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당신도 좋아할걸 “


-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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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재밌다>, <행복하다>, <사랑해>, <자유>와 같은 말이 아니었음이

이상한 현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재미> 있는 삶을 꿈꾸지만, 매일 재밌게 사는 게 가능할까?

감정에 솔직한 삶을 꿈꾸지만, 매일 솔직할 수 있는 것 역시 가능할까?

<자유>를 꿈꾸지만, 백 프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만약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행복할까?

<행복>과 <자유>를 같은 카테고리 안에 넣어 생각했더니

순간 파열음이 발생했다.


<현재 내가 사랑에 빠져있다면>

그랬더라면 <사랑해>라는 단어가 가장 빈도 높은 단어가 되었을 수 있다.

<아, 사랑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듯 내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니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덥다>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는 삶이 아니라서인 듯하다.


< 모두 모두 사랑에 빠지세요 > 주문을 걸고 싶다.


사람, 동물, 일과 사랑에 빠지면 자유는 박탈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행복>과 <자유>는 같은 카테고리로 묶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유>를 선택했기에 < 불행하다? >는 물론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 자유 >를 선택했으므로 < 일상이 단조롭다 >는 성립하지 않을까?

일상의 단조로움은 결국 삭막해지는 삶의 첫발이기도 하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에서는 많은 감정이 파생되므로

사용하는 단어도 다양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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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


-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서 발췌


서머싯 몸의 문장과 같은 관념이 위로인 삶이 바로 자유라는 깃발 아래서 고독을 자초한 사람,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 현재 하는 일과 사랑에 빠져보세요. >라는 제안을 할 때도 많은데,

사람을 사랑하는 상태와 다르게 더 건조한 삶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몰입도가 높은 삶이라 효과는 아주 좋을 수 있다.

목표한 것을 이루니, 행복할 수도 있다.


디오게네스가 찾아다닌 참 사람이란

사람과 사람관계에서 정직한 사람일까?

자신이 선택한 일에 정직한 사람일까?


잠자리의 날개에서 볼 수 있는 시맥처럼 선명하게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일상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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