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온난화가 피부에 와닿는 뜨거움의 연속이다.
어쩌다 지하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야외 주차를 한 후,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와 아무 생각 없이 핸들을 만졌다가 화들짝 놀랐다.
대충 4시간 동안 주차되었던 상태였는데,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자주 잊어버리는 통에 발생한 일이다.>
차창을 조금씩 내렸던 터라 큰 걱정을 안 했다.
아니, 뙤약볕에 주차한 것 자체도 잊고 있어서 마주칠 상황에 대한 대비 자체가 없었다.
화상을 입을 듯이 뜨거운 핸들에서 손을 떼고 밖으로 나왔다.
여름날의 야외 주차장의 주차는 정말 끔찍하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온이 올라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일까?
낮에 장시간 야외에 주차되었던 자동차의 핸들을 만졌다가
화상을 입은 사람도 혹시 있지 않을까?
시동을 걸어놓고 그늘에 가서 쉬면 좋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주변에 그늘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에 들어온 대기까지도 반들거리는 듯
묘한 기운을 띤 늦더위에 완전 KO패 당한 날이다.
말복도 지나갔는데 이게 웬일일까?
짜증은 났는데 짜증의 원인이 날씨이니 누구 탓을 해야 할까?
결국 날씨의 변화를 자조한 사람의 생활 습관이 문제 아닐까?
편리만을 향해 달린 결과가 아닐까? 참 어렵다.
자연과 사람, 양쪽이 모두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일까?
“승리를 거두고 있는 동안은 만사가 질서 정연했다.
그리고 질서 정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척하거나 아니면 위대한 목표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위대한 목표라고?
목표라는 것에는, 언제나 양면이 숨어 있지 않던가?
그중 한 면은 언제나 음산하고 비인간적이지 않던가?
나는 왜 그 점을 보다 빨리 생각하지 않았던가?
나는 정말 그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사실은 모든 것을 의심했고, 구역질 나는 것도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발췌
환경운동가들의 외침에 동조하면서도 함께 외치지 못했던 일이 새삼 후회된 날이다.
좀 더 일찍 그들과 같은 목소리로 외쳤더라면 오늘과 같은 날씨와 만나지 않았겠지?
그들과 함께하는 대신에 나 혼자 생활 태도를 바꿔서 쓰레기 적게 만들기,
각종 세제나 샴푸와 같이 미세플라스틱이 많은 종류를 적게 사용하기,
일회용품 사용 금지 등등을 실천했는데,
내 판단은 실수다. 아니, 너무 소극적인 선택,
<내가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은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군인 아저씨, 하나 가르쳐 줄까?
사람이란 자신에게 닥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르는 거야.
알게 된다면 이미 그때는 너무 늦었지. 알겠어?”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발췌
2015년, 2016년이었나 기억이 엉키지만,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환경운동가 앨고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학교를 방문해서 개교기념 연설했었다.
그의 연설을 듣는 내내 내 생활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고 찔렸었고,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목소리에 감명 깊었었다.
그때부터 내 생활 습관이 순차적으로 바뀌었던 것인데,
그런데 그때부터라도 내가 정신 제대로 차리고 환경운동에 앞장섰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귀가 후 세정제를 사용하지 않고 씻었다.
땀이 사라지자마자 생각은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환경운동가는 아무나 하나? 나와 같이 어수룩한 사람은 환경운동가와 어울리지 않아!
아니,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내가 시작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각자 알아서 지구 지키는 일에 동참하고 있을 거야.
지금은 병들었던 자연이 회복하는 과정일 거야.
그렇게 어둠이 내려앉는 속도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다진 게 없을 때는 판단을 내리고 용감해지는 일이 쉽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더 쉬워질 수도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거의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용감해지는 것은 언제든 가능했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모습이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며
또 바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발췌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를 책꽂이에서 꺼내어 다시 폈다.
책을 펼치자 첫 페이지에 책을 구입 한 날인 2013년 7월 5일과
선생님이 작고하시기 전 해인 2017년 연말에 성북동에서
그 책에 < 날마다 날마다 >라고 적으시고 사인해 주신 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을 펼친 김에 그 책을 엮으신 소회 중 한 구절이 내 심정과 닮아서 옮긴다.
<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 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꿈을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는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 -황현산
우리의 터전인 지구,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나는 출구를 찾을 용기나 지혜가 없으니
누군가가 비상구를 활짝 열어주면 좋겠다.
예전보다 더 숨 막히고 따갑고 끈적이는 이런 여름,
점점 더 심해지는 일은 없겠지?
우리나라는 그래도 분리수거도 잘하고,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에너지도 만들고,
환경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문제는 지구에서 우리나라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세계인이 모두 모범적으로 지구 지키기 운동을 실천하면
후손에게 떳떳한 조상,
후손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