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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Oct 03. 2024

백설 여왕

사랑은 초콜릿맛이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5.


"갑자기 언니가 왜 미애에게 관심을 갖는 거야?"


갈등하듯 침묵을 지키던 지선이는 겨우 그렇게 질문했다. 조금 전까지 통통 튀던 발랄함은 그녀가 녹여서 삼킨 초콜릿과 함께 삼킨 것인지 사라졌다. 진중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 채로 지선이는 저음으로 톤을 낮추어서 말했으므로 분위기까지 함께 내려앉는 듯 느껴져서 당황했다.


"네가 그렇게 의아해하는 게 맞아. 나도 어제까지는 미애를 전혀 기억하지 않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묻는다고 미애에 대해 갑자기 대단한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아니야. 단지 무엇인가가 자꾸 걸리는 게 있어서야. 미애가 꿈속에 왜 나타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 꿈을 꾸기 전 까지는, 그래 꿈속에서 미애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떠올린 적이 없는 친구인데. 지선아!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서 너에게 묻는 거야. 왜 미애가 꿈속에서 날 찾아왔을까? 미애는 잘 살고 있지?"


독백처럼 어제의 꿈을 회상하면서 웅얼대다가 지선이를 바라보면서 조금은 가볍게 질문하려 노력은 했지만 지선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지선이와의 대화가 무거워지면 난 지선이에게 솔직해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잘 살고 있어. 아주 재미있게 잘 살아."


방금 전에 무엇인가를 감춘 듯했던 표정을 지우고 스쳐 지나가듯 말한 후 지선이는 시계를 바라봤다. 5분 전 12시였다. 지선이도 나처럼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일 수 있다.


"언니, 우리 일단 먼저 먹으로 올라가자. 등과 배가 서로 포옹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듯해!"


12시가 넘자마자 우리는 방에서 나와 라운지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라운지의 층인 45층을 눌렀고 문이 닫혔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친절하게도 한층 올라갈 때마다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타고 다시 닫히기를 거듭 반복했다. 내리는 사람은 없이 타는 사람만 많았으므로 엘리베이터의 빈 공간이 사라졌다. 새로 탄 사람들 때문에 뒤로 밀리다 앞사람과 몸이 닿게 되자 나는 불쾌한 접촉을 피하려고 몸을 최대한 말아 감듯이 움츠렸다. 엘리베이터에 있던 모든 사람은 아마도 나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의 접촉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몸을 움츠리고 또 움츠려도 사람들과 닿는 면적은 넓어졌고 결국엔 몸이 닿는 정도를 넘어서 끼인듯한 상태까지 이르자 김밥 쌀 때 김으로 돌돌 말다가 내용물을 너무 많이 들어가 속이 터져 나왔던 일이 떠올랐다. 불쾌하면서도 이 상황에서 터진 김밥 생각이 난 게 어이없었다. 사람들에게 밀리고 사람들 사이에 껴서 정말 터진 김밥처럼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을 때 라운지 층에 도착했다. "땡" 소리에 이어 문이 활짝 열리자 감금상황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질서는 지키면서도 사람들은 서둘러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을 일일이 세어보지 않았지만 눈대중으로 대략 이십 명은 넘을 듯했다. 여자들 대부분은 나처럼 원피스를 입었고,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여자였다.


 “와우, 언니 이 호텔에 처음 와 봤는데 정말 좋다. 사실 이 호텔 1층에 있는 갤러리의 공간이 적당한 크기이고 위치가 좋아서 작가들이 눈독을 들였었는데 갤러리 관장이 작가 선정할 때 엉뚱한 방향으로 까다롭다고 소문이 났거들랑, 왜 있잖아 작품을 평가하는 수준은 떨어지는데 작가의 네임벨류는 엄청 따지는 사람, 이곳 관장이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런 말이 돌아서 작가들의 관심이 기피로 바뀐 호텔이야. 물론 호텔을 드나드는 고객 중에 미술작품의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까 기피했더라도 섭외가 들어오면 얼씨구 하고 달려오겠지만...... 사람의 심리가 원래 그렇잖아."


엘리베이터에서 벗어나자마자 지선이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민망할 정보라는 걸 인식해서인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 소문까지야 나는 들은 적도 없고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으니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선이가 조금 떨어져 걸으면서 


"언니는 호캉스를 자주 하나 봐? 이 호텔이 생긴 게 2년 전인가? 오픈한 역사가 짧은데 전업주부인 언니가 여길 어떻게 알고 골랐어?”라고 물었다. 


 “얘! 전업주부 무시하지 마! 전업주부가 더 문화 부자인 것 모르는구나? 하하하. 그런데 고백하자면, 이곳은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남편의 선물이야.”라고 대답하며 홀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해서 아늑하게 느껴지는 창가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내서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조식을 먹은 레스토랑처럼 뷔페라서 각자 알아서 갖다 먹는 형태로 보였다. 아프터눈티를 기대했었던 터라 실망했지만, 커피나 티와 함께 먹기에 좋은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와 빵을 비롯해서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핑거푸드 위주였다. 지선이가 먼저 먹고 싶은 것들을 욕심껏 담아왔다. 나는 과일 몇 조각만 담은 후 자리에 돌아와 지선이와 마주 앉았다. 배와 등이 닿을 만큼 배가 고프다던 말들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지선이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벌써 양 볼이 불룩해질 만큼 입에 음식을 가득 넣고 씹고 있었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팠구나? 그래도 천천히 먹어. 내가 빼앗어먹지 않을 테니.”


 그녀는 눈만 웃고 입으로는 계속 음식을 씹느라 대답을 안 했다. 나는 지선이가 배가 찰 때까지 먹으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망고 한 조각 입에 넣고 창밖을 보았다. 도로를 걸어 다닐 땐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될 만큼 복잡하게만 보이던 도시가 내려다보니 한눈에 모두 들어와서 길 찾기 쉬워 보였다. 높은 데서 내려다본 도시는 너무 단순해 보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도시는 정말 단순하 다는 것이야. 너무 단순하게 느껴져서 모든 일이 마음만 먹으면 술술 풀릴 듯한 착각? 그래 착각이었어. 현대인들이 고층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너나없이 당당해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로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은근히 기도 죽고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잖아. 문명이 의식의 변화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겠지?


고층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굳이 지선이의 동조를 구하는 말이 아닌 혼잣말처럼 작게 말했다. 먹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 보였던 지선이는 내가 한 말을 귀 기울여 들었는지 오물오물 씹어먹으면서 고개들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맞아 우러러볼 때와 내려다볼 때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지. 그래서 나도 고층을 좋아해.” 


씹던 음식을 모두 삼키자마자 말한 후 지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에게 눈길을 돌리고 물었다. 


“언니 커피 마실래? 아니면 차?” 


 “따듯한 아메리카노.”


 지선이는 내가 주문하자마자 자리를 떠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 자매 혹은 모녀로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밝았다. 고민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잘 사는 듯한 풍경만 봤으므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듣는 궁핍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꼭 속임수 같고, 가짜뉴스로 느낄 때도 있었다. 우리 아파트의 정문에서 나서자마자 볼 수 있는 인도에서 자루자루 콩이나 팥 등의 곡물을 파는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일부러 자주 사곤 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할머니가 행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벤츠를 타고 가시는 걸 본 후 그 할머니가 잘 사시는 분이란 걸 알았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내가 제일 가난한 것 같고, 나만 발을 동동거리면서 사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쪼들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우리 가족뿐인 듯하다는 말을 하면 남편은 팔자가 늘어져서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남편은 빛 좋은 개살구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나는 아낄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아끼면서 살았다. 친구들이 궁상떤다는 말을 할 만큼 아껴서 몇 년에 한 번 남들이 자주 떠나는 여행을 갔다 오곤 했다.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결혼 생활 28년 동안 여행했던 횟수가 10번 정도이고 그중 해외여행은 딱 3번이지만 나는 만족했었다. 만족했었다가 지금은 만족했다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생기는 듯하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우리 집을 제외한 모두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집들은 흥청흥청하는데 우리 집이 그대로인 것은 외벌이이고 남편이 월급쟁이이기 때문이란 걸 문화센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길 듣고 알았다. 알뜰하게 살림만 잘하는 아내가 좋은 아내가 아니고 맞벌이하는 아내가 좋은 아내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데 나가서 돈을 벌 자신이 없다. 궁리는 많은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서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라 심드렁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선이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선이는 3층으로 디저트가 담긴 영국식 아프터눈 티를 가져왔다. 제일 밑은 샌드위치가 있고 그 위로는 조금 단 비스킷 종류고 제일 위는 아주 달게 느껴지는 케이크 조각과 젤리 조각이 있다. 양에 비해서 그릇이 압도적으로 컸다. 


 “엇! 너 어디서 그걸 찾았어? 난 들어오면서 아프터눈 티를 찾다가 없어서 실망했는데? 네가 가져오니 반갑기는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너 그렇게 먹고 또 먹을 배가 남았어?”


 “아! 종업원에게 가서 룸에서 나오기 전에 분명 아프터눈 티가 있다는 안내서를 읽고 왔는데 보이질 않네요? 질문했더니 주문하는 사람에게만 담아주는 형식이라고 하더라고, 고객들의 취향이 달라서 미리 세팅해 놓은 걸 싫어하는 고객이 불만을 말한 적이 여러 번 발생한 이후로 서비스를 변경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언니 낮에는 배부르게 먹어도 돼. 칼로리를 모두 소비할 수 있거든!”


내 질문에 친절하게 모두 대답하고 나서 지선이는 활짝 웃었다. 배고픈 게 사라진 자리로 여유가 자리 잡은 듯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그야 그렇지. 그러면 소화시킬 겸 천천히 먹으면서 아까 말했던 한 미애에 대해서 이젠 좀 이야기해 봐!" 


지선이가 룸에서 하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말하기를 마냥 기다리기 어려워서 먼저 말을 꺼냈다. 아직 그녀에 대해 제대로 들은 게 하나도 없다. 내 말에 지선이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지선은 잠시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망설이는 듯 시간을 끌다가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사실...... 언니, 얼마 전에 동기가 지나가는 말처럼 미애 이야길 해서 미애의 최근 소식을 조금 알기는 해. 언니,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을 지칭해서 말하는 걸까?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문제없고, 남편과의 사이가 무탈하면 잘 사는 게 맞지? 그렇다면 아까도 말했듯이 미애는 잘 살고 있어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니? 한 번에 알아듣기 쉽게 말해봐! 미애는 지금 뭐 하면서 살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 


 지선이 잠시 호흡을 고르듯이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문채 삼키지 않고 시간을 끄는 듯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그렇다는 거야. 잘 살아. 건강하고 재미있게. 언니, 언니는 왜 미애가 궁금해? 꿈속에서 미애가 나타났다는 말이 정말이야? 보통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나? 언니가 미애 생각을 했으니까 연상작용으로 꿈으로 미애가 온 것 아니야? 언니 말대로 전혀 의식하지도 않았고 기억하지도 않던 사람이 어떻게 꿈속에 나타나? 숨기지 말고 이왕 말 꺼낸 김에 언니가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인지 정확하게 말해줘.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언니가 미애를 궁금해할 만큼 친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야.” 


지선이는 타인의 사생활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불편한 듯했다. 어쩌면 불편한 것에 더해서 자신이 말을 옮기고 다니는 캐릭터가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동창들 모임에서는 항상 말이 많이 돌고 돌아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왕왕 발생했으니 어떤 자리에서나 말조심하는 버릇은 <입이 싼> 취급을 받지 않는 좋은 습관이다. 그렇지만 난 미애에 대해서 꼭 알아야 했다. 알아내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절실해진 궁금증이다.


 “맞아, 나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 그리고 너의 성격이 타인의 이야기를 옮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아. 그런데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미애가 꿈에 나타났던 것은 사실이고, 그 이전에는 미애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내가 찜찜해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미애가 꿈에 나타난 것 이 아니라, 글쎄 우리가 만난 장소가 법정이었어. 미애가 나를 고소해서 법정에서 피해자와 피의자로 만난 거야. 생각해 봐! 말이 돼! 아무리 꿈이지만 어이없고 뭔지 모르게 불길해. 그래서인지 잠에서 깬 후부터 줄곧 난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있는 상태야.”


내가 미애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더니 지선이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뭐 고소? 미래가 언니를 고소한 이유가 뭐였어?” 


 “그것까지는 몰라. 그걸 알았다면 조금 덜 답답했으려나? 미애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꿈에서 깼거든.”


 “언니가 알듯이 나는 원래 남의 이야길 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옮기지 않고 사는데, 이 말을 해야 하나? 잠시 혼란스러워 언니. 성향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사생활 영역이라서 가타부타 내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은 삼가고 싶어 언니. 가치관 역시 서로 다르다 보면 얽히지 않고 사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또 이무 일도 아닐 수 있는 일이 언니를 불편하게 할 수 있거든.” 


지선은 미애에 대해 무엇인가 아는 이야기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도 말을 아꼈다. 그리고 말을 시작하기 전에 부연설명이 많은 이유는 그 이야기가 어쩌면 나와 직접적이지는 아니더라도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갑자기 긴장되었다. 타인이 함께 있는 오픈된 공간이라는 걸 상기하자 룸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을 듯했다. 룸으로 가자고 말하려는 찰나에 지선이가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에 우리 동기 중에 결혼 안 한 친구들끼리 만났었어. 그때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몰라. 그냥 소문일 가능성이 높아...... 미애네 부부가 사는 방식이 다른 부부들과 많이 다르다고 해......”


지선이는 또 말을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을 마셨다. 나는 지선이가 하는 말에서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긴장으로 입이 바싹 마르고 심장이 벌렁댔다. 지선이의 얼굴이 심란해 보이는 듯했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듯 입을 달싹거렸다. 다른 부부들과 다르다는 의미가 뭘까? 그 다름의 종류를 상상할 수 없다.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는 의미일까? 요즘 부부들 중에 더러는 생활비를 반반씩 내고 부부가 각자 자기 돈을 관리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의미라면 나와 어떤 연결고리가 될 만한 게 없을 듯했다. 지선이가 한 말의 의미를 추론하는데 지선이가 말을 이어서 했다.


"언니! 혹시 <폴리 아모리>라고 알아? 사실 미애네 부부가 폴리 아모리라는 소문이 났어. 미애가 내게 직접 말한 내용이 아니라 말을 옮기는 일이 더 어렵고 또 미애네 부부의 사적인 부분을 함부로 발설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도 있어."


<폴리 아모리>생소한 단어였다. 몇 번 되뇌어 보았지만 단어의 뜻을 추측하기도 어려웠고 지선이가 너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것으로 미루어 그 단어의 의미가 왠지 좋은 끗은 아닐 듯했다.


"폴리 아모리? 그게 뭐야?"


난감한 표정으로 지선이는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나는 지선이의 입만 바라보았다. 오물오물 지선이의 입모양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데 지선이의 입을 너무 뚫어져라 보아서였는지 지선이의 입이 마치 늘어진 테이프에서 볼 수 있는 흔들림이어서 지지 직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과 마주한 듯 지산이는 시간을 질질 끌었다. 입 안에서 초콜릿향까지 날아갔을 즈음에야 지선이가 드디어 대답했다.


"언니, 놀라지 마! 그게, 쉽게 말하면 동시에 여러 사람과 애정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이야. 부부이지만 서로의 연애 상대자에게 질투하지 않고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어. 미애네 부부도 분명히 소문이 도는 것을 알텐테도 굳이 변명하는 제스처가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소문이 맞는 듯하지만, 나는 미애네 부부의 사생활에 관심도 없고 또 말을 옮기는 일도 거북하고, 그런 사고의 소유자에게 나는 거부감이 강해서 언니에게 말을 전달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어! 사실 기억하고 싶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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