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냐. 입에 붙은 말 중 하나다.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에서 별 거 아니라는 말이 쉬운 것은 어째 좀 성의가 없어보이긴 한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내가 별 거 아니라는 말을 할 때 마다 입을 삐쭉거렸다. 이건 뭐냐 저건 뭐냐 물었는데 별 거 아니라며 말을 툭 잘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안그래도 머리 아픈 세상에서 이것저것 어떻게 다 신경쓰며 사냐는 주의다. 그래서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하기 일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이리 쳐내고 저리 쳐낸 별 거 아닌 일들이 사라지니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문득 아내와 나란히 앉아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재미가 있었는데, 싶었다.
별거 아닌 별의별 것
봄아. 아빠는 이번주에 많이 바빴어. 네가 잘 때 들어와 네가 깨 아침 분유를 먹을 때쯤 출근했던 것 같아. 예전엔 주말이면 평일 내내 안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였는데, 하루는 네가 노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불쑥 들었어. 겁이 났다고 해야 할까. 나만 몰래 시간이 속도를 높인 것 같았지.
어제는 너와 엄마 그리고 아빠가 마트의 중식당에 둘러 앉아 밥을 먹었어. 엄마와 아빠는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짜장면을 함께 먹은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미안했단다. 인기가 많은 집이었어. 잠시 줄을 서서 메뉴를 골랐지. 아빠와 엄마는 짜장면 두 개를 시킬 지, 짜장면과 짬뽕을 하나씩 시킬 지 한참 고민했단다. 참 별 거 아닌 순간이었는데 아빠는 그 순간이 재미있었어. 단맛이 깊게 밴 옥수수 몸통을 입에 문 것 같았어.
짜장면은 맛이 참 좋았어. 별 거 아닌 일, 별 거 아닌 음식도 우리가 별의별 것이라 말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세상에 별 거 아닌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몸소 겪은 순간순간이 어떻게 기억될진 자기 자신도 알 수 없으니 말야. 오늘도 별의별 일들이 다 있을 것 같아. 세식구가 스무평도 되지 않는 작은 집에서 복작복작 함께하니 말야. ♣
이번주 봄이는
저녁 8시쯤 잠을 재우면 자정 정도까지는 기척없이 자다가 그 후론 한 시간쯤 간격으로 자다깨길 반복한다. 누운 자리서 우는 것도 아니고 나와 아내가 자는 침대에 걸터 서서 발을 구르며 우는 것이라 자는 척 모른 채 할 수도 없다. 침대 밑 아이를 뉘인 매트에 함께 누워 재우는게 최선인데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다. 실패하면 안아 재워야 하는데 새벽 세네시쯤 안아 재우는 건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뭔가를 짚고 일어선다는 건 박수를 치며 좋아할만한 일이었지만, 쇼파를 짚고 일어서다 넘어져서 잇몸에 조금 찢어지고 피가 나기도 했다. 나와 아내는 그날 당장 쇼파를 거실에서 치워버렸다.
이번주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보였고 평일 내내 도와주지 못해 더더욱 지쳐보였다. 토요일 하루 정도 밖에 도와주지 못했는데 그날 토요일의 얼굴이 매우 밝아서 도와주지 못한 평일의 나날이 대단히 미안했다. 화창한 날씨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이번주 날씨는 재앙과도 같았다. 하물며 많은 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이엄마들이 있다면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올해 여름은 참 궂기도 하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왜냐하면 그는 표범에 관한 시를 다시 한번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더듬거리는 독일어로 책을 읽어주는 동안, 그는 식물원의 정원에서 표범이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을, 표범이 격자 창살들을 따라서 끝없이 둥그런 매듭을 만들며 도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고양이의 음산하면서도 회피하는 듯한 시선,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시선을 보았다. 표범에게는 마치 수천의 창살들이 존재하며/ 그 수천의 창살들 뒤로는 아무런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장님은 그녀에게 이 구절을 다시 한번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그는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표범과 꼭 마찬가지로 영원히 순환하는 밤 속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