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번째 이야기, 2020년 8월 23일 일요일. 날씨 흐림.
먹구름이 몰려오고 씨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선 돌 구르는 소리와 참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어둔 대낮이 번쩍번쩍하더니 순식간에 물이 불었다. 한 주 내내 한발짝도 나서지 못했던 아내는 급작스런 세찬 비를 바라보며 낙담을 했다. 올해는 좀 너무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전염병과 홍수가 한 해 절반 이상을 집어 삼켰고 고통의 크기는 나날이 커지되 감각은 무뎌져 결국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린 것 같았다. 병에 걸리지 않은 것, 집에 물이 들어차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는 하루가 점점 더 일상이 되어버린 여름이었다. 어떤 해, 어떤 계절은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어릴 적엔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던 계절이 있었다. 큰 배가 침몰했던 한 해의 아픔은 지금도 여진으로 마음이 덜컹거린다. 주말 오후 창밖으론 인적이 뜸하다. 아무도 없어 매미만 운다.
봄아. 사실 아빤 우리 곁을 맴도는 전염병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었어. 처음엔 네가 어려 기억하지 못할 날에 한두 계절 지나가면 사라지고 없을거라 생각했어. 외면하고 싶었어. 마음이 아팠지. 아빠뿐만 아닐거야. 가족들도 마음 편히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오늘 같은 나날들이 지금 네게 어떤 결핍처럼 남을까봐 걱정이 됐어.
네가 세상에 나올 때쯤 스물스물 창궐했던 전염병은 한 도시와 나라를 넘어 전세계로 퍼진 것 같아.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게 되었어. 만남과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져 가. 전염병은 사람의 마음따라 방심하면 더욱더 독해져서는, 지금은 하루에도 수백명의 몸 속에 숨어 들어 자리를 잡지.
모든 문제가 그렇듯, 전염병도 단숨에 종식시킬 방법은 없을 것 같아. 해법을 찾기보단 방법을 찾아 실천해 나갈 때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 그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모두가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겠지.
얼굴을 절반밖에 볼 수 없는 마스크의 시대. 아빠는 마스크에 가로막힌 언어들이 자유로이 너와 나와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갈 수 있는 날들을 기대하고 있어. 하나씩 돋아나는 너의 유치를 자랑하고, 어른들이 한데 모여 너의 걸음마를 칭찬하는 평범한 날들이 얼른 오길 바라고 있어.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집중하도록 하자. ♣
이번주 봄이는
가드를 붙잡고 방방 뛰다 두 손을 가드에서 놓고 잠시 선다. 길면 5초 정도 되는데 그러다 엉덩이로 주저 앉는다. 한 두번 해보더니 연습하듯 계속 한다. 스스로 서는 연습을 하는게 대견하다. 잠시 이가 나는 것이 멈추었고 예전보단 잠을 곧잘 잔다. 새벽에 잠시 깨 바로 잠이 들면 다행인데, 대낮처럼 어둠 속에서 기어다니기도 하여서 그럴 때면 힘이 든다.
이번주 아내는
코로나가 심해져 그야말로 집 밖으로 한발짝도 못나가다 보니 답답해 한다. 블록형 매트를 사다가 터널을 만들고 탈진할 때까지 봄이와 놀아주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라면 나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어떤 가르침을 줄까. 어찌됐던 아내, 그리고 봄이가 양껏 밖에 나가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이처럼 이 글에는 내 취향의 어떤 역사가(변함없이 이어져온 취향, 변화된 취향, 그 양상들이) 기록될 것이다. 더 정확히,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는 내 공간을 기록하는 방식이자, 일상적으로 내가 반복하는 일에 대한 다소 삐딱한 접근이며, 내가 하는 작업과 나의 역사와 나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내 경험의 일부를 이루는 무언가를 막연히 성찰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생겨난 중심에서 포착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 조르주 페렉, 생각하기/분류하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