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번째 이야기, 2020년 8월 30일 일요일. 날씨 흐림.
지금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새문안로와 정동길이 마주하는 삼거리 횡단보도였다. 나는 길건너 골목 사이에 자리한 레스토랑에 가던 길이었다. 가만히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영 익숙하지 않은 자리였고 그 즈음엔 되는 일도 없었다. 정확히는 들뜨고 기대되기 보단 이건 뭐 어째야 하나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사실 좀 억지로 끌려나온 면도 없지 않았다. 어찌됐던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5분 여가 지났을까. 한 여자가 식당에 와 맞은 편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아주 잠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2013년 1월 26일은 꽤 추운 날이었다.
봄아. 어제 아빠는 오랜만에 꽃을 사왔어. 아빠는 사월에 한 번, 팔월에 한 번 꽃을 산단다. 사월엔 엄마의 생일이 있고, 팔월엔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이 있어. 절대 까먹어선 안되는데, 사실 아직 잊은 적은 없어서 다행이긴 해. 아마 너도 까먹으면 안될 것 같아. 그 이유는 나중에 네가 크면 조용히 알려줄까 해.
오늘은 6년 전 엄마아빠가 결혼식을 올린 날이야. 그 날은 햇빛이 아침부터 강렬해서 많이 더웠어. 한여름의 결혼식이 걱정도 됐었지만 수백명의 하객들이 빠짐없이 식장을 찾아주셨어. 아빠는 슈트를, 엄마는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어. 엄마는 화장이 지워질까 눈물을 단단히 참았고, 아빠는 엄마보다 눈물이 많아서 조금은 울컥울컥했던 것 같아. 아빠는 이상하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
엄마와 아빠는 그 날 이후 가족이 되었어. 결혼식을 했다고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닐꺼야. 하지만 그날 결혼식의 입장과 퇴장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아빠는 생각했어. 엄마와 아빠의 부족한 사랑이 오늘 오신 사람들의 성원 속에 한뼘 쯤은 자랄거라고.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그날의 결혼식장은 아마도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가장 소중했던 시공간이 아니었을까.
한 해, 두 해가 가고 육년이 지났어. 엄마와 아빠는 신혼집을 떠나 두 번의 이사 끝에 지금 너와 여기 있단다. 결혼식 후 이천백구십일이 지난 오늘 엄마와 아빠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이 아침을 맞고, 밥을 먹었어. 가족이 된 엄마와 아빠의 하루는 오늘도 꽤 괜찮은 듯 해. 봄이도 괜찮다면 엄마와 아빠의 오늘을 축하해주렴. ♣
이번주 봄이는
걷진 못하나 제법 선다. 서서 꽤 버티다 엉덩이로 푹 앉는다. 직립의 놀라움이 이 정도인데 걷고 뛰면 어떨까 싶다. 재택근무로 아이를 볼 시간이 꽤 있었는데 순간순간 아직도 아이가 낯설고 신기할 때가 있었다. 또 언제 이렇게 컸지 싶은 때도 있었다. 그만큼 한 주가 다르고 한 달이면 몰라보게 달라지는 시기인가 싶다.
이번주 아내는
어느덧 9월을 앞두고 있는데 봄녁부터 한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밖을 편히 못나가니 그게 가장 안쓰럽다. 이번주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해 그야말로 스무평 작은 집에 갇혀 살 듯 하였다. 먹고 자고 사는 것이 매일매일 같은 것은 사실 꽤 곤혹이라 어찌어찌 방법을 찾을까 싶다가도 전염병 탓만 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었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고. 지금 나에게 이 축복받은 겨울이 있다. 장래 결혼을 하면 서영이에게도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딸하나 그렇지 않으면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좋겠다. 그리고 다행히 내가 오래 살면 서영이 집 근처에서 살겠다. 아이 둘이 날마다 놀러 올 것이다. 나는 <파랑새> 이야기도 하여 주고 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의 엄마처럼 나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장기도 둘 것이다. 새로 나오는 잎새같이 보드라운 뺨을 만져 보고 그 맑은 눈 속에서 나의 여생의 축복을 받겠다.
- 피천득, 인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