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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Sep 05. 2020

기분이 어때, 일어서 보니

스물네번째 이야기, 2020년 9월 5일 토요일. 날씨 맑음.

배우 산드라블록은 1964년생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꽤 많다. 어릴적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나온 영화 <스피드> 때문에 산드라블록을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외모보다는 특유의 발랄함과 당당함이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했다. 나한텐 그게 다였다. 동시대의 안젤리나 졸리, 나탈리 포트만과 같은 배우보단 아무래도 무게감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비티> 때문이다. 산드라블록이 지면에 발을 디뎌 바로 서는 장면에서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서는 행위에 관해서는 늘 그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기분이 어때, 일어서 보니

아. 설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니. 몸을 뒤집지도 못한 네가 이제는 제 힘으로 바로 서서 걸음마를 준비하니 놀랍고 또 고마워. 대견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라 누군가를 대견하다 느끼는게 처음인 것 같아. 다른 이들도 네가 선게 대견한가봐. 이제 막 서게 됐는데, 사람들은 네가 곧 걸음마를 뗄 거라고 이야기했어. 


사실 걷는다는 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이 될거야. 그래서 아빠는 너의 걸음마가 차근차근 착실하게 이뤄졌음 해.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자연스런 걸음마가 한 걸음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해. 아주 오랫동안 걷게 될 너의 몸이 충분하게 걷는 일을 인식하고 습득하고 단련하면 좋을 것 같아. 


바로 서 걸을 수 있다는 건, 앞을 보고 소리 내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삶에 크나큰 축복일거야. 당연하게 여길 일이 아닌거지. 아빠는 걷는 것을 좋아해서 이전부터 오래 걷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 동네를 걷는 일, 산길을 걷는 일, 천변을 걷는 일이 많았고 그 자체가 아빠에겐 휴식이고 여행이었어. 그래서일까, 아빠는 아빠가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각했던 순간들이 꽤나 많았어.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언젠가는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에 도착할거야. 걷다보면 휘파람이 나올 날도 있을거고 숨겨왔던 눈물이 흐를 날도 있을거야. 무엇이 어찌되던 걷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거야. 아, 아빠는 걷고 쓰는 일을 중요하다 생각해. 그리고 걷기와 쓰기 중 무엇을 더 중요하냐 묻는다면 걷는 것이 중요하다 말할 것 같아. 우리는 언제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걷다보면 좋을 일이 생길 것 같아. ♣


이번주 봄이는

혼자 서고 앉는 것이 자유롭다. 한번 서면 길게는 20초도 서 있는다. 저도 신기한지 바로 서면 균형을 잡으며 재미있어 한다. 아직 한발짝도 옮기지 못하는데 걸음을 스스로 터득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기대된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울고 웃는 것에 대중이 없었는데, 이제는 눈 앞에 엄마아빠가 없으면 불안한지 많이 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또 안타까워서 손을 뻗어 얼른 안아주었는데 가짜 울음이었는데 대번에 깔깔깔 웃어제낀다.


이번주 아내는

아침부터 잘때까지 붙어 있다보니 무얼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었다. 봄이의 먹고 자는 스케줄에 맞춰 칼같이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그 모습이 거의 로봇과 같다. 전날 먹은 젖병을 소독하고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청소기를 돌리고 이유식을 먹이고 빨래를 돌리고 이유식을 먹이고 빨래를 개고 이유식을 먹이고를 반복한다. TV도 지겨운지 쉴때는 나무 그늘에 누운 사자처럼 멍하니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아이가 자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고난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지 즉각 파악되지 않는 식물들도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한 친구는 '곧게 선 채로 죽어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난초의 경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뿌리가 물에 젖어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뿌리가 족욕을 15분 이상 하지 않았다는 절대적 확신이 있을 때에만 그 식물을 집어 들어도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식물은 이미 병들어 있을 수 있다.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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