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번째 이야기, 2020년 9월 12일 토요일. 날씨 비.
이천십구년 아이를 갖고, 낳은 우리 부부의 마지막 여름휴가는 재작년 구월 이맘때였다. 당시 휴가지는 베트남 하노이. 오토바이로 가득찬 거리 때문일지 휴가를 왔다는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내게는 서울이나 다름없는 시끌벅적한 도시였다. 몇 해 전 베트남 다낭도 다녀왔던 터라 거기서 거기 같았다. 휴가지도 내가 정한 주제에 아내에게 투덜거렸다. 하노이는 별론거 같다고. 이왕온거 재밌게 놀자는 아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덜거렸다. 일년에 한 번 뿐인 여름휴가, 백만원이 넘는 돈을 쓰는 여름휴간데 취향에 안맞으니 혼자 분에 못이긴거다. 참으로 못나게도 죄없는 하노이만 욕하다가 역사상 최악의 휴가를 보냈다. 근데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올해가 이럴 줄이야. 새삼 하노이가 참 좋았다, 싶다.
봄아. 요즘은 엄마와 산책을 나가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할텐데, 이맘때쯤 사람들은 가을이 온 것 같다 말하곤 한단다. 엄마와 아빠는 대개는 구월쯤 휴가를 갔던 것 같아. 아무래도 아주 더운 칠팔월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어딜가도 비싸고 북적였거든. 그래서일까. 구월이 오면, 가을이 오면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단 생각이 자주 들곤 해.
올해는 전염병이 돌아 밖에 나가기도 쉽지 않고 해외를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어. 아직은 네가 어려 해외여행은 애초에 무리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찌됐던 갈 수 있는데 가지 못하는 것과 아예 갈 수 조차 없는 것은 다른 것 같아. 요즘은 네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아빠가 갔었던 이런 저런 여행지의 풍경들이 생각나곤 해.
여름이란 단어와 휴가라는 단어를 한데 묶은 여름휴가는 꽤나 오래된 사람들의 관습 중 하나야. 요즘에야 가고 싶은 계절과 날짜에 휴가를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전에는 휴가는 여름에 가야 한다는 규칙같은 것이 있었었거든. 너무 더운 시기에는 일을 못하니 그때 몰아 휴가를 다녀오란 일종의 조치였는데, 그래도 휴가는 어찌됐든 좋은 거니까. 사람들은 휴가철을 손꼽아 기다렸었지.
우리는 다음주면 올해 내내 미뤄왔던 휴가를 갈꺼야.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잠시 가서 바람을 쐴꺼야. 올해는 아주 멀리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날이 오면 비행기를 타고 아주 멀리 떠나기로 하자. 엄마도 아빠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아름다운 곳에 가서 희죽희죽 웃음꽃이 피는 여름휴가를 보내도록 하자. ♣
이번주 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는게 이런 것인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표정, 미세한 손가락 놀림까지 정말 하루가 다르다. 나란 존재를 한 공간에 같이 사는 어떤 움직이는 물체 정도로 인식하던 아이는 이제 눈 앞에 엄마나 아빠가 보이지 않으면 눈 앞에 나타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잠에 깨서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엄마아빠가 없어서 운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는데 혼자 잼잼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을 보고, 나는 뭔가를 연습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주 아내는
아이가 점점 힘이 세지고 덩치가 커지면서 엄마는 점점 모든 일에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본인의 텐션을 높여 잠시동안 여러가지 일을 빠르게 해치우기도 하지만 이내 지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날이갈수록 아내가 하는 일이 많아진걸 실감한다. 이번주엔 좋은 소식이 있었다. 대기하던 어린이집에 자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뛸 듯이 기뻐했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즉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생성의 '일부이고' 그 '의미인' 것입니다. 이 방대한 우주의 생성 안에서 이리하여 우리가 말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