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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Sep 27. 2020

내게도 처갓집이 있어서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2020년 9월 27일 일요일. 날씨 맑음. 

삼사년쯤 전이었던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는 강화도 터를 잡고 두 분이 함께 살 조그만 이층집을 지으셨다. 내게는 강화도가 이전부터 볕이 좋고, 봄과 가을을 가리지 않고 꽃과 나무 내음이 풍성하여 이전부터 자주 찾던 곳이었다. 나는 내심 강화도에 처갓집이 생긴 것을 좋아라 하였는데, 왠지 모를 시골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깝다면 가깝지만, 멀다면 또 멀기도 한 강화도의 처갓집. 나는 오늘 처갓집을 멀찍이 서 바라보다, 이건 퍽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처갓집이란 단어가 내 삶에 이렇게 밀접하고 안온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였고,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게도 처갓집이 있어서

아.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차를 타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 강화도에 다녀왔단다. 네가 크면 알겠지만 강화도는 섬이지만 다리가 있어 배를 타지 않아도 갈 수 있단다. 일요일 아침이라 차가 많지 않은 탓에 한 시간 반 정도만에 도착할 수 있었어. 너가 외갓집에 와본 것은 사개월, 오개월 전이었는데 그때는 네가 기지도 못하던 때였어서 하루종일 안고만 있었단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울음을 터트렸고.


엄마의 아빠, 엄마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엄마가 너를 갖자 누구보다 좋아하셨단다. 특히나 할머니는 엄마와 아빠를 만날 때마다 아이 소식을 물으실 정도로 너를 기다렸거든. 엄마와 아빠의 몸에 좋은 것이라면 어떻게든 구하셔서 먹이시곤 했지. 그래서일까. 할머니가 사다주신 쑥이며 약이며 살뜰하게 먹은 이후 엄마와 아빠는 너를 갖게 되었단다.


오늘 네가 가본 외갓집에는 넓은 마당과 정원이 있어서 고양이 가족과 하늘을 나는 나비며 잠자리며 이런저런 풀벌레도 많이 볼 수 있었어. 아빠는 너를 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꾼 정원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는데 아무것도 없던 땅에 가을빛을 함껏 머금은 이름모를 꽃과 나무가 건실히 자라 사뭇 감동적이었어. 오늘은 어제보단 햇빛이 강했고 볕을 받은 땅에서는 희미하게 고소한 내음이 났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게 아마 벼가 익는 냄새일 것 같다고 이야기 했지. 


오늘은 어쩌면 네가 처음 만난 가을일지 몰라. 엄마는 가을이 깊은 오늘 강화도에 좀더 오래 머무르길 바랬었는데 아빠는 차가 막힐까봐 조금은 서둘러 집에 왔단다. 집에 와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좀더 머무를껄 그랬나 싶어 엄마와 네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강화도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까 다음엔 외갓집에 들러 이곳저곳을 다같이 돌아보도록 하자. ♣


이번주 봄이는

아내 말로는 서서 한 발자국을 뗐다고 했다. 걷을랑 말랑하는 시기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유식을 몇번 먹여보다보니 뭔갈 씹어 넘기는게 아니라 그냥 꿀떡꿀떡 삼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체할까봐 걱정이 되지만, 문제가 없을 만큼 부드럽게 만들었겠지 싶어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기도 하였다. 길거리 꼬마아이들을 볼 때마다 봄이의 앞날이 그려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이번주 아내는

재택근무 임에도 외부 미팅이 지속되면서 목욕마저도 아내가 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그만큼 체력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과음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영 얼굴을 들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명절을 한 주 앞둔 토요일에 큰 마트에 유모차를 끌고 가서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 같아 낯설고 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이 실험 주택의 거주성은 어떤지, 살기는 편한지, 기회가 되면 아내분께 정직한 감상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한 차례 견학을 마치고 식당 의자에 앉으니 맛있는 와인과 치즈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습니다(낮술이지요). 아내분은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과 밝은 목소리로 응대해주셨습니다. 그 미소를 보고 있으니 '살기 불편할 리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어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건축가가 사는 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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