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번째 이야기, 2020년 10월 4일 일요일. 날씨 맑음.
삼년만에 설악산을 찾았다. 쉬이 오를 산이 아니었고, 그만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올해 내내 미뤄왔던 곳이었다. 산이름을 입에 달고 봄과 여름을 보냈다. 이윽고 하늘은 점점 저멀리 높아만 가며 가을을 불러들였다. 아내는 가고 싶은 곳에 가야 그 갈증이 풀릴거라 이야기했다. 저녁 무렵 소파에 누워있다가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별 말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아들고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두시간 반 내달렸다. 산간도로에 들어서자 전조등에 비친 중앙선만 구불구불 이어졌다. 설악의 밤은 두꺼운 이불을 덮은 듯이 고요했다. 차 속에 웅크려 숨을 죽이다 새벽 세시가 됐다. 입산이 가능한 시간, 찬공기가 온 몸을 돌아 뿌연 김이 되어 시야를 가렸다. 더럽게 힘들겠다, 생각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입꼬리를 씰룩이며 히죽히죽댔다.
봄아. 아빠는 네가 훗날 어떤 산을 좋아하냐 묻는다면 설악이라 답할거야. 그리고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첫사랑과 비슷하다 말할거야. 하지만 첫사랑이 어떤거냐 묻는다면 단답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첫사랑의 단상은 사람마다 다를테니까.
아빠는 삼년 전 설악산을 처음 올랐어. 체력이 약하고 경험도 많지 않아 초입부터 숨이 가빠 고생을 했지.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하고 고개를 위로 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보지 않았어. 그때쯤 어렴풋이 알게 됐거든. 지금의 힘듦, 지금의 고통이 언제 끝날 지를 기대하며 고개를 들었다간 실망만 큰 법이란 걸.
그날의 설악은 햇빛이 들었다가 한없는 구름이 지나갔고, 중턱에 이르러선 가랑비를 뿌렸어. 콧날에 튄 빗방울이 짭조름한 땀과 섞여 손등을 타고 흘렀지. 아빠는 그 순간이 좋았었나봐. 발끝부터 코끝까지 숨이 오르내리다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눈물샘이 열렸는지, 아무도 모르게 작은 울음이 몇 소절의 가사처럼 배어 나왔어.
아빠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하지만 그 순간을 다시 한번 고대하며 오르진 않아. 그때는 그때의 하늘과 바람과 빗방울이 만든 사건일 테니까. 그저 그때 이후 아빠는 산에게 신뢰를 주었고, 또 얻지 않았을까 싶어. 기대고 내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대개는 함께 걷고 대화하는 친구가 된거지.
삼년 만에 오른 설악산은 아빠에게 조금더 너그러웠어. 대청봉에 올라 동쪽으론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고 북쪽으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는 대피소가 자리하고 있었지. 아빠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서북능선을 따라 걷다 햇살에 붉게 물든 단풍잎을 보았어. 멀리서는 선이 곱고 가까이선 색이 고와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곤 한참을 서있었지.
한달쯤 지나면 볼 수 있을까. 아빠는 설악의 단풍이 조금씩 번져 사람들의 눈망울에 붉게 비칠 때 너에게 가을을 말하며 소개하려 해.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을 씩씩하게 보낸 네가 가을을 만날 때,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가장 좋아하는 설악산에 대해 이야기할께. 알아듣지 못해도, 말할 수는 없어도 그때는 아빠와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자. ♣
이번주 봄이는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 눈을 맞추고 웃으면 따라 웃는다. 성에 차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이유식 수저질을 빨리하라며 보채기도 한다. 걷진 못하나 기는 속도가 맹렬하여 잠시도 눈을 떼기 어렵고,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관심가는 것에 다가가고자 만사를 제쳐둔다. 누군가의 입과 귀, 콘센트 등 구멍이란 구멍에는 손가락을 넣어보며 꼼지락꼼지락거린다. 육아는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든다고 하던데 물리적인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하여 힘에 부친다는 말이 어울릴 듯 하다.
이번주 아내는
긴 연휴로 세 가족이 이곳저곳을 쏘다니다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 보인다. 막내로 자라 어리광이 심했던 아내의 모습은 맥주 두세캔을 먹었을 때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되레 강인하단 인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래서 일지 문득 내가 요즘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방지축 제멋대로라고 여겨왔던 아내가 요즘 내겐 높고 깊은 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은 조금은 짠하기도 하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와비사비한 것은 가끔 무로부터 갓 생겨났을 때의 연한 파스텔 색조로 나타나기도 한다. 표백하지 않은 면직물과 삼베, 재생지의 미색처럼. 부풀어오른 꽃봉오리의 녹갈색처럼. 묘목과 새싹의 은녹색처럼.
- 레너드 코렌, 와비사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