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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Oct 18. 2020

아이의 300일,
서른 주간의 기록과 고백

서른번째 이야기, 2020년 10월 18일 일요일. 날씨 맑음.

작년 이맘때 아내와 태교 여행으로 단풍이 한창이던 강원도 홍천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은 아이를 가진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의 시간의 흐름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 같았다. 봄이의 태명은 토토였다. 오래 전 읽은 <창가의 토토>라는 소설책의 주인공 토토처럼 엉뚱해도 호기심이 많은 맑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토토는 아내의 뱃속에서 280일에 더해 5일이 지난 12월 18일 세상을 맞았다. 나와 아내는 처음 아빠와 엄마가 되었고, 토토는 봄이라는 외자의 이름을 받아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지난해에 쓰던 휴대폰을 꺼내 당시에 찍었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꼽아보니 그 때의 마음도 조금씩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이제껏 그 무엇보다 막막했던 날들도 있었고, 아이로 인해 어쩌면 내 삶이 자그마한 의미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났다. 봄이는 몸을 뒤집고 한참을 기어다니다 이제는 일어나 다만 몇발자국을 걷는다. 아마도 지금의 발걸음은 아주 오랜 여정의 시작일 것이다. 봄이의 그 여정에 나와 아내와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나의 여정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온 것일까. 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거울에서 보지 못한 나의 얼굴과 어디선가 멈춘듯한 나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이었다.


아이의 300일, 서른 주간의 기록과 고백

아. 네 기억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언제부터 기억이 나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빠가 3월 28일 처음 네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아마도 네가 기억할 수 없는 지금의 나날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 기록하지 않으면 스러져버리는 우리의 기억들을 티끌만큼 붙잡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날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 


아빠는 서른 주간 매주 일기를 쓰면서 너와 말로 하지 못한 대화를 하고 있었어. 비록 혼자만의 독백이지만 언젠가 이 글을 읽고 이 글에 언급된 자그마한 사건들을 질문하는 네 모습을 상상하며 웃기도 했단다. 너는 아직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지만, 여기에 기록된 서른 편의 이야기가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짧은 시간과 아빠의 단편을 알게 하는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제 곧 겨울이 찾아올꺼야.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가득메우고 마침내 눈송이가 날리는 겨울날이 오면 생일날 케이크에 꽂힌 단 하나의 촛불을 끄게 될꺼야. 세가족이 한데 모여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녕,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기도하는 밤이 되기를. 촛불의 수가 한 해에 하나씩 늘어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단 뜻이 될테니. 아, 우리는 우리의 하루와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도록 하자. 내가 네게 아빠이고 네가 내게 아들이 된 축복을 기억하며. ♣


이번주 봄이는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열은 없지만 콧물이 주렁주렁하여 숨쉬기를 불편해한다. 감기에 걸리기 이전부터 코는 물론 얼굴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여 콧을 닦이기가 참 어렵다. 기껏 코를 닦여놔도 기침 한번이면 양쪽 콧구멍에서 콧물이 드렁드렁하다. 덕분인지 나도 감기에 걸렸다. 


이번주 아내는

나와 아이 모두 감기에 걸려 비실비실대고 찡찡대는 와중이라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으나 되레 배숙을 삶는다던가, 약을 사다준다던가 하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계신다. 아내는 건강 측면에서는 감기도 피해가는 여장군 타입이어서 아플 때마다 대단히 의지가 된다. 물론 아내는 내가 아픈 것을 귀찮아 한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선생님의 얘기를 정리해보니 대충 이랬다. 1교시 내내 웬만큼 책상을 툭탁거리고 나면, 토토는 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선생님이 (조용히만 있어준다면 뭐, 서 있어도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큰 소리로 "친동야 아저씨!" 하고 밖을 향해 외친다. 공교롭게도 교실 창문이 토토에게는 행복하고,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불행하게도 1층에 있었고 게다가 길이 바로 코 앞이었다. 그리고 경계라고 해봤자 낮은 울타리만 있을 뿐이어서 토토는 쉽게 지나가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로야나기 테츠코, 창가의 토토 中


*<아이의 300일, 아빠의 일기장>은 아이의 100일부터 300일까지, 총 30주간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그동안 봄이의 성장과 더불어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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