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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Oct 10. 2020

오늘의 하늘과 몇 점의 부끄러움

스물아홉번째 이야기, 2020년 10월 10일 토요일. 날씨 맑음.

그 날 오후 다섯시쯤, 아무 생각없이 탄 택시에선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은 창문을 열고 연신 죄송하다 하셨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기사님은 택시를 시작한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본래는 어떤 일을 하셨냐고 물었다. 여행사 대리점을 수십년간 해왔다고 했다. 대리점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는 말에 이유를 물을 필욘 없어 보였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겠다는 질문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택시는 성수대교에 오르더니 한강을 가로 질렀다. 이 날의 하늘은 푸른 바다에 붉은 용암이 흐드러져 천천히 타는 듯 했다. 기사님은 패키지 여행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다 강을 다 건널 때쯤 말을 멈췄다. 나는 그저 좋은 저녁을 보내시라 한 마디를 보탰다. 택시는 빽빽하게 주차된 골목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갔다.


오늘의 하늘과 몇 점의 부끄러움

아. 너도 느낄 수 있었을거야. 아침에 눈을 떠서 맞는 하늘과 저녁을 먹기 전 어둑어둑 해가 지는 하늘은 매일매일 찾아와도 하루하루 다르다는 걸.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느낄 수 있을거야. 우리의 하늘은 계절마다 높이와 빛깔이 다르다는 걸. 올해의 가을은 어느 때의 가을보다 하늘이 높아서 사람들이 더더욱 하늘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구나.


매일매일, 매 계절이 다른 하늘이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의 하늘은 사람들의 막막한 눈 앞을 틔우고 먹먹해진 가슴을 달래주었어. 하늘에는 친구가 많아서 해와 달, 구름과 바람이 어우러져 음악같은 풍경을 만들어내지. 비가 오래 오는 날도,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도 있겠지만 그 또한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아빠는, 누군가는 아름답다, 아름답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하늘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렵기도 해. 하늘은 거울 같아서 내가 숨긴 모든 것을 아는 것만 같거든. 내색 할 수 없지만 감출 수는 없었던 부끄러운 마음이 하늘에 비춰 얼굴을 들 수 없는 나날도 많았던 것 같아. 나를 위해 다른 이를 비난하고,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일삼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순간을 위해 생각과 행동을 멈추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그곳에 모두다 기록돼 있는 것 같아.


하늘은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부끄러운 일들을 스스로 되뇌고 잘못했다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몰라. 아주 먼 옛날부터 수많은 이들의 잘못과 부끄러움, 그리고 나직한 고백을 듣고자 매일같이 높아지고 넓어져 왔을지도 몰라. 아빠도 봄이도 우리의 시간에 비례해 그만큼의 잘못과 부끄러움이 생겨날텐데, 우리는 우리의 하늘에 만큼은 솔직할 수 있도록 하자. ♣


이번주 봄이는

제 나름 매우 규칙적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깨고 잔다. 배가 고프면 소리를 질러 배고픔을 표현하고, 혼자 두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만든 규칙에는 아랑곳 하지 않으나 본인의 규칙에는 철저하다. 한발자국을 걸었다고 하나, 걷는 모습을 보고자 하면 철저하게 그 모습을 감추는 것 또한 규칙이랄까.


이번주 아내는

아이가 자는 시간, 거실에는 웅얼웅얼거리는 라디오 소리만 들리고 아내는 그 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활달하여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익숙했던 아내는 고된 육아 탓일지 시선을 하늘에 뺒긴 채 시간을 보낸다. 올해 가을은 하늘이 유난히 청명하여 더욱이 그 모습이 애잔하기도 하였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세상에는 비슷한 직업이 세 개 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영화감독, 야구감독. 이 셋의 공통점은?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사실이다. 지휘자는 연주회인데도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로 서서 본인은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영화감독은 자기 영화인데 본인이 연기도 안 하고 필름에 담기지도 않는다. 프로야구 감독은 타자석에도, 마운드에도 서지 않는다. 이 셋은 모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 히사이시 조,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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