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경중에 대하여
예전에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직장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삶의 목표이자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나의 삶도 조금 더 멋있어 보일 줄 알았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직장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 있어 너무 많은 변주가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 하고자 해도 따라주지 않는 환경을 탓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상황 탓을 하지 않고 묵묵하게 제가 그랬습니다, 하고 감내하는 순간 내 어깨에 짐은 내 뒤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되었다.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 이후에 실망하는 일을 겪기 싫어 지독한 회피형으로 살았던 때도 있었다. 열심히 하면서도 대충 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는 내가 했던 것들에 대해서 조금 깎아내리려고 노력하거나 행복했으면 됐다고 넘겨버렸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내 마음에 상처는 생기지 않았으니까.
빛을 받게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그림자가 생긴다. 어두움을 뚫고 나가지 못한다면 내 뒤에 어떤 그림자가 있는지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볼 수가 없다. 그러다가 조금씩 밝을 곳으로 나아가면 그림자가 생긴다.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보고 생각하는 대로 다시 생각을 한다. 힘든 순간을 보고서 표정이 어두우면 예전에는 밝았는데 요즘은 안 좋은 일이 있나 봐? 떠보는 말들도 하고, 밝게 지내면 하나도 안 힘든가 봐? 하면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순간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삶이 재미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네네하고 넘기지만 불특정 한 다수와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과 직면하다 보면 나의 마음이 다치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이곳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가끔 묻는다. 왜? 왜 떠나는지를 묻는다. 앞길이 보여서요,라는 말을 들으면 부끄럽기도 하면서도 매일 야근하고 삶을 갈아 넣는 이 삶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다른 곳도 똑같을 텐데?라고 대답을 해주고 싶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벽부터 무조건적인 책임감을 요구하는 모습 등으로 회의를 먹고 나가는 사람들을 본 이후로는 나도 선뜻 같이 남자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장례식이 생각난다. 하루는 내내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문서를 만들고, 3일은 장례식장에서 내내 울고 출근한 날에는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못 들었던 날. 다른 선배가 회의 중간에 이 친구가 제일 고생했습니다, 해주시는 걸 듣고는 회의장에서 눈물을 꾹 참고 내 사무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행사준비를 하라고 해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그냥 하라던 그 모습.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그 사람의 가족들이 엉엉 울고 매달리고 다 큰 어른들이 엉엉 울던 모습들이 아직도 아른거리고 정신을 온전히 잡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때 행사를 하라던 상급자. 일주일 만에 사람들이 추슬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안 된다고 거듭 이야기를 해도 하라면 하는 거지,라는 분위기 때문에 결국 행사를 하던 모습. 그리고 상급조직에서 우리를 문책하던 모습도 생각이 난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었는데 개인의 문제로 발생했던 사망사고였는데 우리 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왜 이건 안 했지요? 자살예방교육을 언제 했는지까지 표시해 가던 후배. 나는 그때 걔가 가고 혼자 사무실에서 계속 실소가 나왔다. 좋아서 웃었냐? 아니다. 되게 그 상황이 웃겼다. 그리고 기도했다. 너도 나중에 네가 근무하는 곳에 있는 사람이 잘못되었을 때 문책하듯이 잘잘못 따지는 후배를 만나.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 네가 왜 못 찾아냈는데? 네가 잘못한 거잖아라는 말을 꼭 돌려서 말하는 순간들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열심히 해도 타의에 의해서 꺾이는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난 이후로는 변수가 많은 곳에서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 이후의 삶이 진짜 삶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최선을 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만 꽂혀, 그래서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곳에서 최선은 다 한다. 다만 기대를 안 할 뿐이다.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 말을 한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퇴근하고 나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저녁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고, 이번 주말에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어떤 말을 할까 설레기도, 기대도 해보라고. 즉흥적으로 잡힌 여행 속에서 가끔 만나는 변수들을 걱정하기보다는 기대하라고.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 어떤 평가라든지 상여금이라든지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하여 정해지는 모든 순위들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선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이것을 기대의 경중이라고 하고 싶다. 가벼운 기대는 비교적 큰 상처를 주지 않는다. 다만 진심으로 기도하고 절절하게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기도의 깊이가 곧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낸다. 가볍게 기대하되 최선은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또한 퇴근한 이후의 삶이 너무 소중해져서 책과 기타를 가까이, 요즘은 야구도 가까이(전민재를 사랑하는 편), 운동도 자주 하러 나간다. 퇴근하고 난 이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정리한다.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하거나. 매번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호(好)의 영역에 있는 것들을 자주 만나며 만지며 닿으며 들으며 먹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