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은이 부모님이 도시에서 벌인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건 효은이가 네 살이 되던 해였다. 부모님의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자 대신 할머니가 효은이와 누나를 돌보러 오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셔서 할아버지 병구완을 위해 할머니가 본가로 돌아오시면서 두 아이도 데리고 오셨다. 이때 별 저항 없이 따라온 누나와 달리 효은이는 울며불며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태여서 강제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댁에 와서도 효은이는 엄마를 부르며 자주 울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툭하면 감기에 걸리고 자주 아팠다. 그런 효은이가 가여워 할머니는 효은이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들어주셨다. 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보러 왔는데 매주 그런 건 아니었고 어떤 때에는 몇 주 만에 오기도 했다. 그럴 땐 전화를 걸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남매는 엄마 보고 싶다고 울었다. 이런 식의 생활은 효은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 부모님이 사업을 접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이어졌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되자 효은이는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지만 떼도 많이 늘어 있었다. 엄마가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물건을 던지거나 욕을 하는 걸로 불만을 표현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야단을 치려고 하면 할머니 방으로 달아나 훈육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훈육에 대해 할머니의 개입과 잔소리가 심한 편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속상했지만 사업을 실패하고 얹혀사는 처지라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는 집 근처에서 다시 식당을 열었는데 동네가 관광지가 되면서 손님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엄마도 출근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두고 일을 나가는 게 안심이 안 되었지만,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치이는 것도 힘들고 시부모님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는 것도 힘들어 모른 척, 나갔다고 한다. 아이들 돌봄은 다시 할머니 차지가 되었고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효은 엄마는 맞벌이 한답시고 효은이 곁에 있어 주지 않아서 정서가 불안해진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면 아이들이 힘들긴 하지요. 특히 저학년 시기에는요. 하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 반에도 맞벌이 부모님 많지만 정서 문제가 보이는 아이는 거의 없거든요.”
“그럼 우리 효은이는 왜 그렇게 된 걸 까요?”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지요. 알아내서 하나씩 고쳐나가면 효은이도 편안해질 겁니다. 우선 징징대는 건 애정결핍에서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요. 저는 애정을 준다고 주거든요. 정말이에요.”
“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이 관점에서 봐야 해요. 효은이가 원하는 애정과 어머니가 주시는 애정이 같은지부터 봐야겠어요. 효은이는 엄마한테 뭘 원하나요?”
“자기 편 드는 거요. 누나랑 동생 편 말고 무조건 자기 편만 들래요."
"그럼 그런 느낌을 갖게 해주시면 되겠네요."
"근데 효은이 버릇이 더 나빠질까 봐...”
“그래도 효은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효은이가 바뀌어요.”
“(한숨을 쉬며)누나나 동생은 별 탈 없이 잘 크는데 왜 효은이만 유별난 걸까요?”
“조용해 보인다고 별 탈 없이 잘 큰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똑같이 힘들지만 참는 걸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만약 효은이 누나가 이런 경우라면 효은이 이상으로 신경 쓰셔야 해요. 지금은 우선 효은이를 신경 써야 하지만...”
“아이들이 달라도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어요.”
“기질은 타고나는 거라서... 제가 뭐라 말씀 드릴 수 없어요.”
“네... 근데 애가 별나니까 힘드네요... 이런 생각하면 죄 받겠지만... 어떻게 저한테 그런 애가 태어났나 싶을 때도 있어요.”
“네, 그러실만 해요. 근데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의 기질을 고를 수는 없어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기질은 유전이고 변하지 않아요. 효은이가 지니고 태어난 기질은 어머니가 받아들이셔야 해요. 효은이도 자기가 그런 기질을 선택한 게 아니거든요. 태어나 보니 그냥 그런 아이인거예요. 효은이 본인이야 말로 황당한 일이죠. 그런데 주변에서 자기만 나쁘다고 하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건 아는데... 애가 승부욕은 또 왜 그리 강한지... 어떤 땐 감당이 안 돼서 그냥 어디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한숨)”
"그 마음 저도 알아요. 저도 애 둘 키우면서...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낳았으니 키우긴 했지만... 아이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네요."
"엄마 자격도 없죠, 뭐..."
“아이고, 엄마 자격 있어요. 효은이를 지금까지 키웠잖아요. 다른 엄마들은 몰라도 효은이 엄마는 가장 애쓴 엄마인 거, 제가 보증해요. 덕분에 효은이가 이렇게나마 크고 있어요.”
“선생님도 아이가 둘이시라고... 승부욕 없었나요?”
“제 아이들은 승부욕 별로 없었어요. 뭐 덕분에 그냥저냥 쉽게 키웠어요. 효은 엄마에 비하면 제가 운이 좋았죠. 근데 승부욕 없는 녀석들은 또 그 나름대로 키우기 힘든 면이 있더라고요. 자식에 관한 한 키우기 쉬운 경우, 어려운 경우는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자식은 열이면 열 다 힘들죠. 낳았으니 키워야 하고 키우자니 잘 키워야 하는 건 우리의 숙명이랄까요... 효은이가 지금은 승부욕이 강해서 엄마가 힘드시지만, 두고 보세요. 언젠가 효은이가 승부욕 덕을 볼 날이 올 테니까요.”
“(희미하게 웃으며) 아이고, 그런 덕이 있을까요?”
“승부욕이 꼭 나쁘지만은 않아요. 덕분에 효은이가 공부 잘하잖아요. 수업 시간에 가르쳐보니 잘 알아듣고 과제도 빨리 해내더라고요. 엄마한테 리본 묶는 거 배워서 금세 써먹잖아요. 지금은 친구들과 다투는데 온 신경을 써서 공부 머리가 안 보이지만 머잖아 공부로 두각을 나타낼 겁니다.”
“(안도하며)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효은이의 승부욕을 꺾어서 해결하려 하시면 안 돼요. 스스로 승부욕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야지요.”
“근데 지금은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효은이의 승부욕은 인정욕구에서 오는 것 같아요.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 그게 인정욕구지요. 효은이가 인정받고 싶은 대상은 누구일까요?”
“엄마인 저겠죠.”
“네, 지금은 그런 것 같아요. 효은이가 어리니까요.”
“대상이 바뀌기도 하나요?”
“그럼요. 어릴 땐 엄마, 결혼하면 아내, 자식이 다 자라면 자식에게...”
“자식에게도요?”
“네, 자기 삶은 젖혀두고 자식에게 모든 걸 거는 어른들 주변이 있지요? 남들이 보면 헌신적인 부모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식에게 좋은 부모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요. 인정욕구는 대상을 향해 의존하게 만들어요. 결국 자존감이 낮은 거지요. 효은이가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엄마에게 의존하고 사랑받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나타나는 부작용일 수도 있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효은이에게만 특별한 엄마가 되어 보시면 어떨까요? 효은이만 따로 산책도 데려가시고 둘만의 비밀이나 대화를 만드시고요. 효은이가 생각할 때 엄마가 온전히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요.”
아무 힘 없이 태어난 아이의 생존은 엄마역할에 달려있다. 살아남기 위해 부모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거나 몸이 불편하면 엄마를 찾아 자지러지게 운다. 이 때 엄마가 아이의 필요를 잘 알아서 충족시켜주면 아이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덜 갖게 된다. 언제든 자기 편이 자기를 보호할 거라는 걸 믿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배가 고프지만 자지러지게 울지 않아도 곧 엄마가 나를 먹여 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기다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아이가 태어나 처음 느끼는 신뢰이다. 나중에 자존감의 재료가 되는 인정욕구와 자율성, 자신에 대한 긍정적 자신감은 이때 만들어진다. 엄마가 조금 늦게 젖을 주더라도 신뢰가 있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욕구가 일정하게 채워지지 않거나 양육자의 태도가 변덕스럽거나 심지어 양육자가 바뀌는 일이 잦으면 아이는 이 세상에 대한 신뢰 대신 의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생존이 보장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데 대체로 예민한 긴장 상태를 보인다. 그래서 조금만 배고프면 악을 쓰며 울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엄마를 힘들게 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자신의 생존이 불안해서 운다. 울지 않으면 젖을 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 엄마가 나를 버려서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이를 까탈스럽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야단을 자주 맞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존감의 재료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스스로 알아서 뭔가를 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율성이나 긍정적 자아감은 생기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야단을 치고 금지를 당하니 수치심을 배운다.
모든 아이가 이 공식대로 자라지는 않는다. 대개는 한 두 번 늦게 젖을 줬더라도 그 다음에 꾸준히 안정적으로 대하면 아이는 금세 좋아진다. 하지만 태어나기를 예민하게 태어난 아이라면 불안한 상황이 좀 더 길 수 있다. 어쩌면 효은이가 이런 경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