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엄마한테 욕을 하는 이유

by 나는일학년담임

아이들이 효은이 욕을 처음 들은 건 전학 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체육 학원에서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승부욕이 강하다 보니 무리하게 뛰다 술래에게 들킨 모양인데, 안 움직였다고 우겨봤지만 친구들이 안 받아주자 화가 폭발한 모양이다. 지랄하네. 병신 새끼가.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한 아이가 너 욕했으니 관장님한테 이를 거라고 했다. 그러자 효은이는 더 센 욕을 했다. 일러라, 시발놈아. 마침 근처에서 놀던 3학년 아이들이 이 장면을 봤다. 그중엔 효은이 누나도 있었다. 누나는 효은이를 나무라며 이따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일러주겠다고했다. 그러자 효은이가 누나에게 흙을 뿌리고 넘어뜨렸다. 그 일로 관장님께 야단을 맞았는데 집에 가서도 누나에게 분풀이 공격을 해서 엄마도 애를 먹었다고 한다. 효은이 엄마가 내게 의뢰하신 고민 중 가장 큰 게 효은이가 욕하는 습관이었다.


“남자아이가 엄마한테 욕을 한다는 건 엄마를 만만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엄마가 힘으로 효은이를 훈육하시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아빠가 타일러 보시면 어떨까요?”


“아빠가 바빠서 효은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는 데다가 화나면 너무 무서워서 효은이가 아빠 앞에선 고분고분해요. 그래서 그런지 애 아빠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해요. 근데 효은이가 욕을 할 땐 눈빛이 변하는 것 같아요. 제 아들이지만 어떤 땐 무섭게 느껴져요...”


“사실 학교에서도 아직까지는 욕을 안 했어요. 제가 없는 상황에서 욕한 걸로 제가 훈육하면 효은이 입장에서 억울할 것 같아요.”


“학교에선 욕을 안하면서 왜 집에서는 그러는 걸까요?”


“제가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의식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효은이처럼 똑똑한 아이는 욕을 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자기를 싫어할 거라는 걸 잘 알아요. 지난번 체육관에서도 누나에게만 덤볐잖아요. 아무에게나 욕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누나를 만만하게 여기는 부분도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동생에게 공격받는 아이들은 우울감이 높거든요. 효은이가 바뀌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일단 제가 효은이가 욕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상황을 좀 볼게요.”


“효은이가 욕하는 상황을요?”


“네, 일단 효은이가 제 앞에서 뭘 잘못해야 저도 훈육할 빌미가 생기니까요. 제 앞에서 하지 않은 일로 훈육할 수는 없어요.”


“혹시 욕을 해서 친구들이 더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욕을 해도 친구들에게 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하거나 자신에게 하게끔 상황을 유도해보려고요.”



***


다음 날 점심시간. 전교생이 차례로 음식을 받아 학년별로 지정된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일학년은 식사 시간이 길어 제일 먼저 배식을 받지만 가장 늦게까지 먹는다. 상급 학년 형님들이 후다닥 먹고 운동장에 나가 축구며 야구를 하는 소리가 급식실까지 들리면 일학년 아이들의 조바심도 시작되면서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진데. 효은이도 급한 표정으로 운동장 쪽 그네를 곁눈질하며 말한다.


“선생님, 저 오늘 감자조림 안 먹을래요.”


효은이 식판을 보니 구슬처럼 작은 감자조림 몇 알이 남겨져 있다. 숟가락으로 뜨려고 하면 한 숟가락에 모두 들어가 한 입이면 먹을 것 같은데. 아참, 효은이가 감자를 싫어한다 그랬지? 난 일부러 시간을 끌며 천천히 말한다.


“감자조림... 먹기 싫어?”


“네, 배가 불러서요. 아니, 지금 배가 막 아플라 그래요.”


“(옆 아이가) 뻥 치시네. 너 빨리 나가서 그네 맡을라 그러지?”


“아니야, 나 감자 싫어하니깐 그렇지. 선생님, 이거 안 먹어요. 알겠죠?”


“흐음. 감자를 먹어야 몸이... 튼튼해지는데...”


“아, 진짜! (애원하는 표정으로) 오늘만 봐줘요. 네? 빨리요!”


“흐음... 감자를...”


“(내 말을 끊으며) 내가 배 아프다니깐요. 배 아프면 죽는다구요! 내가 죽으면 어떡할라 그래요?”


“헉. 죽으면 안 되지. 너 죽으면 일학년 선수들 다리 묶어 줄 사람이 없어지잖아.”


“그니깐요. 감자조림 안 먹을래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알겠죠?”


“아, 감자조림 먹어야 튼튼해지는데. (양팔에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봐, 선생님도 감자조림 먹어서 알통이... 어라? 선생님 알통이 어디갔지? 꼼쥐가 물어갔나?”


“아, 시간 없다니깐요. 나 빨리 나가야 한다구요! (주변을 둘러보며) 애들은 벌써 다 나갔잖아요!”


“그러니까... 너도 감자조림 먹으면 나갈 수 있는데...”


“아, 진짜!”


효은이는 화를 내다가 안 되겠는지 감자조림을 한 숟가락에 모두 모은 다음 신경질을 내며 한입에 털어 넣는다. 동시에 빈 식판을 내보이며 나간다고 말하려는데 아직 입안에 감자가 있어 말이 안 나온다. 그러자 대신 손짓으로 나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나 또한 효은이를 흉내 내며 손짓으로 안 된다고 가위표를 한 다음, 다 먹고 나가라고 신호한다. 효은이는 짜증을 내며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씹어 먹은 다음 식판 처리를 마치고 나간다. 실랑이하느라 맨 나중에 먹은 셈이다. 효은이는 급식실에서 나오자마자 그네를 향해 내달린다. 나는 효은이가 그네에 도착할 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효은이가 그네에 올라타려고 하자 다시 부른다. 내가 부르자 효은이가 또 왜 부르냐고 소리친다. 난 말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결국 효은이가 다시 달려온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선생님이랑 양치하러 가야지.”


“(긴박한 표정으로 그네 쪽을 보며) 앗, 저 그네 타러... 아, 지금 양치러하 가면 안 돼요. 진짜요. 그네 먼저 타고 와서 양치할래요.”


“양치 먼저 해야 해. 어서 가자.”


“(신경질 내며)아, 싫어요! (입을 벌리며) 저 이 하나도 안 썩었어요.”


“양치 먼저하고 놀아. 빨리 가자.”


“아, 진짜!(울먹인다)”


“지금 나랑 가서 양치하면 놀게 해줄게. 하지만 지금 말 안 들으면 넌 못 놀아.”


“아, 그런 게 어딨어요? 선생님이 뭔데 맘대로 정해요?”


“우리 일학년이 언제 공부하고 언제 밥 먹고 언제 양치하고 언제 놀지 결정하는 사람이 우리 학교에 딱 한 사람 있어. (나 자신을 가리키며) 그 사람이 누굴까?”


“선생님...”


“잘 아네. 그러니까 지금 양치할 건지 안 할 건지 네가 결정해.”


내가 양치컵을 들고 화장실 쪽으로 가자 효은이도 양치컵을 들고 따라온다.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노란색 양치 컵이다.


“오, 효은이 양치컵 이쁘네. 누가 사줬어?”


“...(화가 났는지 말을 안 한다.)”


“흐음. 선생님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데...”


“...(마지못해서) 엄마가요.”


“아이고, 효은이는 좋겠다. 엄마가 이런 것도 사 주고. 선생님 이렇게 예쁜 컵 못 써봤는데.”


“엄마한테 사달라 그럼 되잖아요.”


“그러게. 나도 다음에 엄마 만나면 말씀드려봐야겠다.”


양치가 끝나자 효은이가 그네를 향해 달린다. 아이들은 효은이가 오자 효은이랑 놀기 싫은지 옆에 있는 미끄럼틀로 옮겨간다. 효은이는 그네 탈 생각 대신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전 같으면 미끄럼틀에 가서 친구들 노는 걸 트집 잡을 텐데. 한 결 좋아진 느낌이다. 마음 같아선 한 발 더 나아가 효은이가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면 좋겠는데... 잠시후 효은이가 친구들에게 눈길을 거둔다. 나는 효은이가 그네에 막 타기 시작할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창문을 열고 소리친다.


“일학년, 들어와!”


그러자 운동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교실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효은이는 그네에서 털썩 뛰어내리더니 터덜터덜, 맨 나중으로 들어온다. 들어오면서 화가 안 풀렸는지 입이 비죽 나와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점심시간 즐거웠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각자 논 이야기를 신나서 쏟아놓는다. 하지만 효은이는 별 표정이 없다. 난 아이들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 효은이에게도 묻는다.


“우리 효은이는 무얼 하고 노셨나?”


“...”


“(옆 아이가) 선생님, 효은이 하나도 못 놀았어요.”


“엥? 못 놀았어?”


“(옆 아이가) 선생님이 감자조림 다 먹으라 그랬잖아요. 으이구, 좀 봐주지 그랬어요. 선생님 땜에 효은이 하나도 못 놀았잖아요.”


친구들이 자기 편을 들어주자 효은이가 불쌍한 표정을 짓더니 책상 위에 슬그머니 엎드려 훌쩍이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아이들이 나를 타박한다.


“으이구, 저 봐요. 효은이 울잖아요. 선생님은 왜 효은이한테 자꾸 뭐라그래요.”


나는 효은이를 건성으로 힐끗 보고 다시 아이들을 향해 시각 읽기 놀이를 할 테니 두 명 씩 짝을 지으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서로 짝을 맺는데 효은이만 남는다. 그러자 효은이가 작은 소리로 투덜거린다.


“아, 존나 짜증 나!”


“헐. 효은이가 ‘존나’라 그랬다! 선생님, 효은이 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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