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그러지 말구 선생님이 조금 참으세요.”

by 나는일학년담임





아이는 왜 욕을 할까. 욕하는 아이가 나쁜 아이 취급을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아이여서 욕을 하는 건 아니다. 아이의 언어습관은 옷과 같아서 어른이 입혀주는대로 나온다. 욕하는 습관은 양육환경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가 욕을 하는 문제로 학부모 상담을 하다보면 다들 민망해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욕하는 아이의 가족들은 대부분 입이 험하기 때문이다.


비속어나 욕을 하는 어른은 대부분 아이였을 때부터 욕을 시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언어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아이들은 비속어를 ‘학습한다.’ 비속어는 대부분 짧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어휘로 입에 잘 붙는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욕을 대신해 감정을 표현할만한 어휘를 잘 모른다. 욕은 처음 시도하기가 어렵지, 일단 하기 시작하면 감탄사처럼 일상적인 어휘가 된다. 일학년 아이들의 평소 대화를 들어보면 비속어의 형용사적 기능은 잘 아는 것 같다.


“(급식 메뉴를 보고 와서) 선생님, 오늘 급식에 치킨 나온대요. 열라 맛있겠죠?”


아이들이 비속어를 쓸 때, 표정에서 어떤 폭력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쓰는 부사나 형용사들이 비속어임을 모른다는 의미다. 양육자가 바로 잡아주지 않은 것이다. 일부러 비속어를 쓰라고 모른 척한 게 아니라 아이의 언어습관에 신경 쓸 여유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경우다. 아이에게 신경 쓰고 싶어도 신경 쓸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쁜 학부모인 것이다. 학부모를 나무랄 일이 아니라 학교에서라도 바로 가르쳐야 한다.


“열라? 그게 무슨 뜻이야?”


“열라요. 존나 맛있다는 말인데.”


“존나? 아이고, 그건 또 무슨 말인고?”


“으이구, 엄청 좋다는 말이잖아요.”


“아하. 기분이 아주 좋다는 말이구나.”


비속어를 쓸 때마다 고쳐주면 그때는 멈칫,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안 쓰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무심코 비속어를 쓴다. 그래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나와 보내는 있는 시간이라야 네댓 시간 뿐, 나머지 시간에는 여전히 비속어를 쓰는 언어환경이라서다. 비속어나 욕을 하는 아이를 보면 욕에 노출되는 환경이 있다. 가장 큰 건 부모의 영향이다. 아이의 언어습관은 부모의 영향을 받는데 우아한 어휘나 사유 깊은 표현을 쓰는 부모가 키우는 아이는 다양한 어휘를 유창하게 사용하지만, 비속어나 욕을 자주 하거나 욕이 난무하는 영화를 즐겨 보는 가정의 아이는 입도 험하고 말투도 공격적이다. 두 아이 모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뿐이지만 적절한 어휘 선택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다. 욕하는 아이의 경우, 부모가 일부러 아이에게 그런 말투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저학년 시기는 아직 자의식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어휘와 말투를 그대로 수용해 쓰는 걸로 애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학습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에게 비속어를 못 쓰게 하면 저항하기도 한다. 부모님이 쓰는 말투를 버리고 선생님의 말투를 받아들이는 것을 부모님이 대한 배신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욕을 하면 나쁜 어린이라고 나무라면 아이들은 죄책감을 학습하게 된다. 결국 부모님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줘 애착형성에 문제가 된다. 대신 더 좋은 다른 표현이 있으니 욕을 대신해보자고 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고학년이 되어 아이 스스로 정체성이 강해지면 비속어를 쓰는 것이 자신의 품격을 낮추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말투도 고쳐질 것이다. 하지만 품격은커녕 자존감도 못 만든, 그래서 거친 바닥에 머무르게 될 아이들은 어쩌나.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폭력 영화 속 건달처럼 험한 입이 되어 세상이 나가게 되면.


효은이가 욕한 일을 계기로 욕에 대해 공론화를 해보기로 했다.


“아니, 근데 욕은 왜 하는 거야? 욕 안 해도 되잖아.”


“짜증이 나니깐 그렇죠.”


“욕하면 짜증이 없어지나?”


“없어져요. 선생님도 한 번 해보세요.”


“아, 그래? 나도 짜증 나면 욕해야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근데 조심하세요. 괜히 몰르구 2학년 선생님 있는데서 욕하지 마시구.”


“아, 맞아. 그렇겠네. 2학년 선생님이 화나실 수도 있으니까. 그럼 너네가 말 안 들어서 짜증 날 땐 욕해도 되지?”


“헉. 그건 아니죠. 선생님이 욕하면 좀 무서울 거 같은데.”


“(갑자기 버럭하며) 야, 그럼 너네는 짜증 날 때 욕하면서! 선생님은 참으란 말이냐? (표정으로 가슴팍을 팡팡 치며) 아, 시발. 진짜 열 받네. 짜증도 막 나고. 너네 걸리기만 해. 1학년이고 2학년이고 아주 다 죽여버려. 아오, 열 받어!”


어떤 아이는 놀라서, 어떤 아이들은 무서워서 아무 말도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여전히 아이들을 일일이 쏘아보며 계속 욕을 퍼부을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의 얼굴이 무서움에서 낭패감으로 변할 즈음, 평소처럼 표정을 풀고 말한다.


“신기해! 너네 말대로 욕을 했더니 짜증이 줄었어! 내가 왜 이런 걸 몰랐지? 앞으로도 계속 욕을 해야겠다. 아! 2학년 선생님한테도 알려드려야겠다. 형아들 복도에서 뛸 때 욕하시라고. (다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내가 2학년 선생님 만나고 올 테니까 쉬는 시간 끝나면 너네 국어책 꺼내 놓고 있어. 알았지? 안 펴 놓으면 다 죽었어! 아오, 열 받어!”


내가 교실을 나가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두런거린다. 마침 복도에 2학년 아이가 지나가자 얼른 불러세우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한다. 2학년 아이는 얼른 교실로 들어가더니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한다. 내가 교무실에서 나와 교실로 향하자 한 아이가 아이들에게 선생님 오신다고 외친다. 아이들이 후다닥 국어책을 펴고 바르게 앉는다.


“뭐야, 너네 벌써 책 폈어? 아이고, 착해라. 근데 웬일이야? 너네 원래 선생님이 책 펴라고 해도 한참 있다 펴잖아. 오늘 무슨 날인가?”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선생님이 펴라 그랬잖아요. 안 펴면 죽는다고.”


“아, 내가 그랬지? (무서운 표정을 하고) 맞아. 아, 욕을 하니까 참 좋네. 너네가 말도 잘 듣고. 아, 진작에 이렇게 할 걸. 알려줘서 고마워.”


“(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근데... 선생님은 욕 안 하면 안 돼요? 이상해요. 무섭기도 하고.”


“아, 그래? 선생님이 무서우면 안 되지. 무서우면 선생님이랑 말도 하기 싫어질텐데. 학교 오기도 싫어지고.”


“그니깐요. 선생님은 욕하지 마세요.”


“야, 그럼 선생님 스트레스는 어떡하냐? (다시 화난 표정으로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아오, 또 열받네. 이런 씨...! (욕을 하려다 참는 척하며) 아오, 이럴 때 욕을 한 바탕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텐데.”


“(다른 아이도 나서며) 선생님이 욕했을 때 진짜 무서웠어요. 우리 오빠(6학년)처럼. (아이들을 향해) 야, 니네도 그랬지? 휴, 디지는 줄 알았네.”


“아, 그래? 너네가 무서워하면 안 되지. 무섭게 공부하면 공부도 안 되고 급식 먹어도 체한다는데. 그럼 어떡하지? 효은이는 욕하고 선생님은 욕 못하면 선생님만 억울하잖아.”


“그니깐 효은이랑 선생님이 둘 다 우리가 다 욕을 안 하면 되죠.”


“(효은이를 보며) 그럼 효은이가 말해 봐. 효은이가 약속을 하면 선생님도 약속할게.”


“(효은이가 멈칫거리자 아이들이) 효은아, 빨리 욕 안한다 그래. 으이구, 너땜에 우리까지 무서우면 어떡할라 그러냐? 너도 무서울거면서.”


효은이는 안 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한다. 하지만 나는 한 발 더 나아간다.


“효은이가 욕 안 하기로 한 건 좋아. 근데 다른 애들이 욕하면 어떡해? 그럼 욕하고 싶을 때 참은 효은이랑 선생님만 억울하잖아.”


“아, 그럼 우리 모두 욕 안 하기로 하면 되죠.”


“아, 그런가? 그러면 되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선생님이랑 효은이만 억울할 뻔했네. 선생님도 이젠 정신 바짝 차리고 욕 안하게 조심해야겠다. (입을 막으며) 나도 모르게 욕하면 안 되니까.”


“선생님이 깜빡하고 우리한테 욕을 하면요? 그럴 수 있잖아요.”


“아, 맞아. 욕하고 싶을 만큼 화나도 참아야 하잖아. 근데 참았더니 너무 화가 나면 어쩌나? 열받아서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잖아?”


아이들도 공감은 하는 것 같은데 대책은 안 떠오르는지 아무 말이 없다.


“에이, 그냥 욕해도 되기로 할까? 선생님은 지금 욕하고 싶은데. 너네가 아무 말도 안 해서 짜증이 났거든.”


“에이, 그러지 말구 선생님이 조금 참으세요.”


“(당장이라도 욕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너네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열 받아서 그러지.”


“아니, 우리가 말을 못할 수도 있지 선생님이 왜 열 받냐구요?”


“그냥 자꾸 화가 나. 짜증도 나려고 하고.”


“그럴 땐 상담 쌤이랑 상담하세요. 우리도 지난 번에 상담 쌤이랑 상담했는데.”


"그래? 상담하면 짜증이 없어져?"


"네. 상담하면서 숨도 천천히 쉬고 그러면 화가 없어진대요."


“그래? 그럼 우리 중에 상담쌤 뽑으면 되겠네. 누가 욕하고 싶은 마음을 잘 풀어 줄라나?”


아이들이 잠시 생각하더니 연우가 말한다.


“효은이요. 효은이가 욕을 많이 해봤으니깐 잘 알겠죠.”


keyword
이전 15화"우리 아빠도 욕 잘하는데. 씨발이라 그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