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한 존재는 평소에 존재감을 쉽게 느낄 수 없다. 나무로 우거진 숲이나 생명체로 가득한 바다가 그렇다. 그러다 위기 상황이 생기면 숲의 나무가, 바다의 산호초가,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가 이제껏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당연하게 만들어줬는지, 그 존재감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위기가 닥쳐야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가 어떤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되는지 다양한 매체들이 이야기하고 주목한다. 그제야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새기는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씨스피라시(seaspiracy)'에서 말하는 바다의 위기는정말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없는 내용이었다. 친환경,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고 다니니 주변에서 관련 정보가 있으면 나에게 공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씨스피라시'도 그렇게 추천받은 다큐였다.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바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침 그날, 하루 끝에 영상을 보며 쉬고 싶었고 씨스피라시가 생각났다. 환경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짐작만 하고 어떤 이야기인지 감도 잡지 못한 체 보기 시작하였다.
잔인한 장면을 잘 보지 못하기에 몇 번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도중에 끌 수 없었던 이유는 무작정 촬영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도 연락을 피하는 관계자를 보며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진실은 생각보다 더 어둡고 무서웠다. 어업을 하는 기업, 그걸 지원하는 기업, 그들에게 후원받는 환경단체가 만든 세상은 엄청 거대했다. 우리가 믿는 가치가 사실은 그들이 만들어 낸 가치였다. 이 내용도 너무 충격적이지만 그중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건 2048이라는 숫자이다.
2048은 2048년을 의미한다. 우리가 바뀌지 않고 이대로 어업을 이어나간다면 바다가 텅 비어버리게 될 예상 연도이다. 바다에 아무런 생명체가 살지 않는다면, 바다가 죽는다면 이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나는 이제껏 지구 멸망은 내가 아닌 미래 세대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구가 황폐해지고 멸망에 가까워지게 된다면 그때를 살아갈 세대에게 덜 부끄럽고 싶었다. 하지만 2048년이라니, 고작 30년도 안 남았는데. 저때에는 내가 살아있지 않을까? 믿고 싶지 않지만 이게 현실이구나 하는 경각심이 확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다 위쓰레기 섬의 46%가 어업 활동으로 나오는 폐기물이라면 내가 부족하더라도 실천하고 있는 플라스틱 줄이기가 의미 있는 일일까? 속상함과 함께 공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선택지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제의식을 공유할 한 명, 한 명을 만드는 것이다. 참 다행히도 지구가 겪고 있는 문제,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먼저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한 명이 될 것이다. 여러 명이 모여 하나 된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완벽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행동할 것이다.무작정 속상해하다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서투르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