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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ug 20. 2021

다시 꺼내 읽을 글

첫 책이 나오는 그 언젠가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엄지손가락 두께의 얇은 책, 바닥이 비치는 깨끗한 물속에 담긴 발이 그려진 표지,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느껴지는 거친 질감의 종이. 교보문고나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독출판물. 괜히 제목도 더 길어 보인다. '슬픈 기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이 책은 Q. 당신을 아프게 하는 슬픈 기억이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잠깐 생각해본다. 나를 아프게 하는 슬픈 기억? 내가 울었던 기억? 분명히 있을 텐데 슬픈 기억은 쉽게 잊는 편이고 아픈 기억은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아 답을 미룬다.


작가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오늘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들은 노래가 있나요?, 오늘 맛있다!라는 말을 하게 한 음식은 무엇인가요? 간단한 질문인데도 답하기 쉽지 않다. 내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 야무지게 적어 내려간 작가의 이, 기억이 멋있어 보인다. 안 그래도 스스로에게 질문이 많은 편인데 왜 굳이 질문으로 가득 찬, 그 질문에 답도 잘 못하면서 이 책을 고르게 됐을까? 솔직한 욕망을 터놓자면 글을 잘 쓰고 싶어서이다. 독립출판물로 완성되어 세상에 나온 이 책이, 작가의 글이 샘나기도 해서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싶지만 최근 글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설명하고 싶다. 처음 작가 승인 메일을 받을 때만 해도 당장 내 책이 생긴 것처럼 기다. 책이 될 글도 없었으면서. 곧 현실을 깨닫고 꾸준히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글을 묶어 책으로 내야지 하는 조금 먼 미래의  었다.


몇 개의 글이 쌓이는 동안 나에게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나만의 마감일도 생겼고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서 첫 브런치 북 만들다. 글쓰기에 관한 책 읽게 되었고 증쇄되는 출판물에 대한 동경도 생겼다. 많은 글을 접할수록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다른 작가들의 글솜씨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꿈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꿈이 이렇게 흐릿해지도록 둘 수 없었다. 계획형 인간에게는 목표가 필요하다.


먼 미래에 출판할 책이라면 자고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무언가가 있어야지! 그럼 내가 전할 수 있는 무언가는 무엇일까? 이 고민이 내 마음가짐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한 사람에게라도 와닿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뒤엉켰다. 아직 나만의 무언가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대답하지 못한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어딘가에 있는 내 기억을 더듬다 보면 혹은 더 많은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생겨날까. 결국 마음만 먹고 답 찾지 못한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미래의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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