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꿈같은 게 생겨 버렸다.
할 일 없이 누워있고 놀았던 긴긴 시간 동안 뭘 하고 이제 와서...
잠도 못 자고, 이틀에 한 번 머리를 감는 것도 사치인 이때에 하필...
내 꿈은 주인을 닮았는지 눈치가 없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한 건 작년 이맘때였다.
대입을 위한 생기부 작성과 학생들의 자소서 첨삭이 끝났을 무렵
나는 언제까지 이런 재미없는 글만 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동안 쓰던 글들은 생기부, 자소서나 추천서
혹은 말썽꾸러기 녀석들에게 쓰는 편지를 가장한 잔소리였다.
전혀 문학적이지 않고 참신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쓰기의 언저리에 있었다.
심지어 대학원에서 전공 분야도 작문 교육일 정도로...
꿈은 없고 그냥 놀고 싶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대충 즐겁게 사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를 어쩌나...
꿈이 생긴다는 건 참 곤란하다.
꿈은 열심히 살게 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게 만든다.
아직 통잠을 자지 못하는 아들 덕분에
알람 시계가 없이도 요즘 유행하는 '미라클 모닝'이 가능하다.
그래서 기적적으로 나에게도 꿈이 생겼나 보다.
새벽 네 시 아들은 어김없이 나를 깨운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이다.
모두 잠든 시간 아들에게 젖을 물리면
글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노트북을 켤 수 없어 머릿속으로 문장을 되뇌고 다듬는다.
아기가 잠들면 급하게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다음날 옮겨 적는다.
이래서 예술가들은 밤을 새워 창작을 하고,
스님들은 새벽에 수행을 하시나 보다.
남편에게 나의 꿈을 고백했다.
불현듯 작가가 되고 싶다고...
남편은 나에게 꿈이 생기기를 기다렸다는 눈치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에는 아들을 전적으로 맡아 시간을 확보해 준다.
또 작가들의 작업 공간에는 간식이 쌓여 있어야 한다며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사다 준다.
그 간식을 나보다 본인이 더 많이 먹는 게 흠이지만...
아들 하나로도 버거운데
이 꿈이라는 녀석은 또 어떻게 키워야 하나.
나는 이 꿈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하지만 많은 고민을 할 여유가 없다.
아기가 다시 배고파하기 전까지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떠돌던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지금은 나를 설레게 하는 글쓰기가
그동안 발만 담갔다 포기했던 수많은 취미들 중 하나가
되어 버릴 수도 있지만
아들을 키우는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을 쏟아보기로 한다.
일단 쓰고 보자.
<남편의 참견>
아가야, 아빠도 꿈이 생겼어. 그건 비밀이야.
너도 너만의 비밀스러운 꿈을 하나 가져봐. 그리고 우리를 놀래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