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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Jul 26. 2021

저는 성공한 덕후입니다.

나는 남편을 덕질하고 있다.

덕질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몇 가지 간추려 보았다.

(혹시 브런치에 남편 자랑을 하면 불법인가?)


첫째, 그는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남편은 사람들과 모여 여러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잘 살펴보면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만 보면 나도 수다쟁이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직장에서도 나이를 불문하고 남편을 '대나무 숲'처럼 여기는 선생님들이 많다.

학생들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을

이상하게 우리 남편 앞에서는 술술 풀어놓게 되나 보다.


둘째, 그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사정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기를 기르다 보면 여러 갈등 상황이 생기고 의견이 같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는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준다.

또 변덕스러운 나의 기분을 일일이 헤아려주고 공감해주려 한다.

아기를 대할 때에도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늘 아기에게 먼저 상황을 설명하고, 존중하니 아기도 남편을 잘 따라준다.


셋째, 그는 취미와 관심사가 많은 사람이다.

야구, 골프, 캠핑, 요리, 사회학, 작곡, 등등 관심 분야가 정말 다양하다.

비록 어느 것 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꾸준히 시도하며 천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 스스로 즐겁게 보내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마저 에너지가 생기게 해 준다.

덕분에 내 삶도 풍부해진 것 같다.


그 밖에도 남편의 매력은 아주 많다.

남편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분리수거를 가장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집안일도 야무지게 잘한다.

남편이 씻은 그릇을 만지면 뽀득뽀득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은 고기를 아주 맛있게 잘 굽는다.

나는 회식 때 고기를 잘 굽는 남편에게 반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성인지 감수성이 굉장히 발달된 세련된 사람이다.

남편은 적당히 흥을 아는 사람이고,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아는 멋진 사람이다.


그 모든 이유들을 뛰어넘는 가장 큰 매력을 최근에 발견하였다.

육아휴직을 하고 1년 간 함께 육아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니까 힘든 일을 함께 하자."

그는 육아휴직과 육아를 당연히 함께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산 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미역국을 끓여주고,

외출해서 돌아올 때면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간식들을 사다 준다.

아침잠이 없는 아들과 매일 산책을 나가주고,

아들의 똥을 치우는 것, 목욕을 시키는 것, 잠을 재우는 일을

늘 웃으면서 기쁘게 해내고 있다.


이런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워 덕질을 시작한 보람을 느낀다.

덕후는 계를 못 탄다는데

나는 최애와 결혼도 하고 최애와 똑같이 생긴 아들까지 얻었으니

성공한 덕후임이 분명하다.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나 연인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함께 왔다.

결혼을 약속할 때 우리는 '인생 친구'가 되기로 하였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내 인생에는 이 친구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아들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빠처럼만 크자.


<에필로그>

분명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직업병인지 남편의 생기부가 완성되어버렸다.

이정도면 '인 서울'은 문제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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