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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Aug 30. 2021

인생은 멋쟁이 토마토처럼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 나는야 케첩 될 거야, 나는야 춤을 출거야
뽐내는 토마토

       -동요 '멋쟁이 토마토' 中-


아기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동요의 가사이다.

멜로디가 신나고 경쾌해서 우리 아기도 꽤 좋아한다.

노래에 맞게 율동을 만들어서 아기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놀다가

가사를 유심히 들어보았다.

잘못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토마토들이 주스가 되고 싶고, 케첩이 되고 싶다고 한다.

어른의 상식으로 보면 주스와 케첩은 토마토의 죽음이다.

게다가 한 토마토가 생뚱맞게 춤을 출거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주제의 통일성이 떨어져 보인다.  


국어교육을 전공한 나로서는

아기에게 이 노래를 들려줄 때마다

작사가의 의도를 알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릎을 탁! 치면서

이 노래에 숨은 뜻을 발견하였다.


국민 동요인 '멋쟁이 토마토'를 문학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문학적 고찰이라 하니 말은 거창하지만 

헛소리를 있어 보이게 포장해보겠다는 뜻이다.


노래의 처음 두 행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토마토의 외관과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모양은 울퉁불퉁하고, 새콤달콤 향기를 풍기는 토마토는 빨간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토마토 세 마리(?)가 등장해서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한다.

토마토 1: 나는 주스가 되고 싶어.

토마토 2: 나는 케첩이 되고 싶어.

토마토 3: 나는 춤을 출거야.


다들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문제의 '토마토 3' 이 친구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그동안은 토마토 1, 2, 3을 같은 비중으로 여겨

주제의 통일성을 의심했었다.

하지만 토마토 3에 방점을 찍고 보니 의외로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노래의 주인공, 즉 멋쟁이 토마토는 '토마토 3'인 것이다.

토마토 3은 주변 친구들이 주스가 되고, 케첩이 되겠다는

현실적인 꿈을 꿀 때 흔들리지 않고 춤을 추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 토마토인 것이다.

주스나 케첩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야 이룰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지만

춤을 추는 것은 현재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이나 직장을 꿈꿀 때

춤 추기, 노래 부르기, 요리하기, 책 읽기, 외국어 공부, 세계여행처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에는 대부분 노력과 희생이 따르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고,

신나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래, 역시 웃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진짜 성공이다.


문득 부끄러운 지난날이 떠오른다.

매년 이맘때면 EBS 문제집에서 수능에 나올 만한 문학 작품을 추려

색색의 분필로 분석해가며 "이건 꼭 외워!" 따위의

무책임하고도 끔찍한 이야기를 수시로 했었다.

학생들에게 주스와 케첩이 되기를 은근히 강요하고 있었다.


문학이 학생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변화를 줄 수 있는지에 소홀했다.

공부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중요한 말을 생략했다.


학생들 모두가 지금의 우리 아기처럼

동요에 맞춰 엉덩이만 실룩거려도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다시 학생들을 만난다면

멋쟁이 토마토처럼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그나저나 별거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그럴싸하게 할 일인가...

나 아직 안 죽었다.  


아기보다 엄마가 더 좋아하는 튤립 사운드북



<에필로그>

작품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부디 훌륭한 동요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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