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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Sep 13. 2021

'슬의생'은 의외로 육아 필수템!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전에는 아기가 잠든 틈을 타 밥을 흡입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반찬을 꺼내어 밥을 먹고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는다.

밥을 먹을 때마다 틈틈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다.

비록 본방사수는 꿈도 못 꾸고, 한 시간 반짜리 드라마를 5-10분씩 쪼개어 봐야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보기에 이만한 드라마도 없는 것 같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육아 필수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네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편안함이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성격들이 좋다.

악역이 등장하지 않고, 누군가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못난 마음이 없는

맑고 깨끗한 캐릭터들만 등장한다.

갑자기 누가 배신을 하지는 않을까, 사고가 나서 주인공이 죽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다.

육아를 하는 현실이 스펙터클 하기 때문에 드라마만큼은 마음 놓고 보고 싶은 나에게 제격이다.

게다가 율제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은 매일 같은 수술복 차림의 수수한 모습이다.

수유복 차림에 세수도 못한 채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여느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둘째, 나의 꿈이 숨어 있다.

나는 의사가 되기를 꿈꿨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에는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서 잠시나마 생물학을 전공했던 적이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진로를 바꿨지만

늘 의사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메디컬 드라마를 보면 열정이 샘솟는 것 같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새벽 수유를 할 때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의 비장한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잠도 못 자고, 며칠 씩 씻지 못한 채 눈 비비며 아기와 놀아주면서

인턴이나 레지던트의 생활을 간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많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우리 집 귀염둥이는 내가 있어야 산다.


셋째, 사랑이 있다.

열 시간이 넘는 어려운 수술, 당직, 수시로 생기는 위급 상황 등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숨 돌릴 틈도 없어 보인다.

그런 생활을 버티게 하는 건 역시나 사랑!

시즌 1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시즌 2에서는 율제 병원에 사랑이 넘쳐난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 사내연애를 하는 순간 출근이 기다려지는 마법이 펼쳐진다.

약도 없다는 월요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시즌 2의 종영을 앞두고 지난주에는 내가 응원하던 커플이 연애를 시작했다.

다섯 번만 고백을 하겠다던 당돌하고 사랑스러운 추민하 선생님과 양석형 교수의 데이트를 보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내 마음도 덩달아 설레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나도 다시 연애를 시작하였다.

전쟁 같은 육아를 함께 하는 전우애 말고,

사내커플의 마음으로 육아에 임해 보기로 한다.


넷째, 사람 사는 맛이 있다.

드라마에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내성적인 의사, 오지랖 넓은 의사, 천사같이 착한 의사, 무뚝뚝한 의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진심으로 환자를 대한다는 점이다.

혹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에 저런 의사가 어디 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금수저라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집단은 유토피아처럼 실존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 아주 조금씩은 달라지지 않을까.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다 보면 내가 속한 집단이 따뜻해지고,

사회도 서서히 아름답게 물들지 않을까.

나는 우선 내 옆에 있는 우리 아기한테 진심을 다해야겠다.

사랑을 듬뿍 받아본 아이가 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시 이런 것이 좋은 문학의 힘인가 보다.


그나저나 슬의생이 몇 회밖에 남지 않아서 너무 아쉽다.

이제 어떤 드라마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 이런 드라마 또 없나?


넌 엄마처럼 밥 먹으면서 티비보면 안된다.


<남편의 참견>

정의롭고 희망에 찬 이야기를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철없고 세상을 몰라서가 아니라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아들아, 우리 힘들지만 좋은 생각 갖고 살자! 우리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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