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Sep 20. 2021

우리는 '읍'에 산다.

사랑에 빠져 달콤한 미래를 약속하는 연인들에게 찬 물을 끼얹는 건 집 문제이다.

나와 남편도 비슷한 실정이었다.

이백 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는 삼십 대 초반의 교사 커플에게

십억을 훌쩍 넘는 집을 사서 결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집을 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부모님께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다.

둘째, 주택 청약에 당첨되는 경우: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더더욱 많이 보지 못했다.

셋째, 대출을 여기저기 끌어와서(소위 영끌) 집을 사고 빚과 더불어 사는 경우: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우리 월급으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봤자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성실하게 공부하고 취직까지 했고, 사치하거나 낭비한 적도 없는데...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집값이 잘못한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혜롭게 이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읍'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우리가 근무하는 지역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는 원룸이나 투룸을 전세로 얻을까 말까 하는 값으로

무려 50평대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신혼부부가 50평 씩이나 하는 큰 집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우리 아파트는 20평대와 50평대 집값이 큰 차이가 없었고

기왕 읍에 살기로 한 거 넓은 집에나 살아보자 하면서

덜컥 50평대 아파트를 사버렸다.

정말 '읍'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을 구하니 결혼부터 육아까지 우리의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우리가 '읍'에 살게 되면서 얻은 것들이 참 많다.

첫째, 돈의 자유를 얻었다.

물론 이 집을 사면서도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빚이 우리 삶을 지배할 정도는 아니었고,

이전보다 조금 알뜰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사방에 맛집과 카페들이 넘쳐나는 도시와는 다르게

딱히 돈 쓸 곳이 없어서 저절로 소비가 줄어들었다.

또 걸어서 출퇴근을 하게 되니 교통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둘째, 공간의 자유를 얻었다.

넓은 집에 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신나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꿈에만 그리던 드레스 룸이 생기고

남편에게는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홈짐이 생겼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방 한 칸쯤은 통 크게 비워둘 수도 있었다.

이 집에 이사 온 뒤로 줄곧 코로나 시국이었는데 집이 넓어서 집콕을 하는 게 힘들지 않았고

아기를 낳고 몇 달간 집에만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셋째, 시간의 자유를 얻었다.

도시에 살고 싶어서 장거리를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60킬로 가까이 운전을 하고 다녔고, 하루의 꽤 긴 시간을 도로에서 보냈다.

출근만 해도 지쳐버렸고, 퇴근을 하면 다음날 출근길 걱정을 했다.

늘 피곤해서 도시를 즐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밭두렁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노래 두 곡을 채 듣기 전에 학교가 나온다.


돈,  공간, 시간

이 정도면 모든 걸 다 가진 게 아니겠는가!


물론 '읍'에 산다는 것은 여느 젊은 부부들과는 사뭇 다른 삶의 양식을 의미기도 한다.

지어진 지 30년이 훌쩍 지난 우리 아파트에는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이 우리 부부밖에 없다.

대신에 아파트 곳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신다.

대부분의 유흥은 집에서 즐겨야 하고,

가끔 서울에서 약속이 있을 때에는 남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직은 가끔 반짝이고 시끄러운 도시를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곳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했을 것이다.


우리가 '읍'에 살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고,

'읍'에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것은 감사한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집값은 해도 너무하다.

동물들도 새끼를 낳기 전에 거처부터 준비한다는데

젊은이들이 뭘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게 만든다.

집 문제만 해결되면

더 많은 연인들이 결혼을 하고,

더 많은 부부들이 아기를 낳을 수 있을 텐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풀이 이 정도는 되어야 읍에 산다고 할 수 있지!


<남편의 참견>

당신과 함께면 어디든 좋습니다.

이전 21화 '슬의생'은 의외로 육아 필수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