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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Sep 27. 2021

둘째보다 포르쉐?!

결혼을 하면 아이 한 명은 꼭 낳고 싶었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 명쯤은 감당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 보니 나는 아이 한 명도 버거운 사람이었다.

특히 신생아 시절은 너무나 지옥 같아서

남편과 나의 카톡 대화창에 공지사항으로 '둘째 금지!!'라는 문구를 박아놓았다.

행여나 아이가 조금 자라 여유가 생겨 과거의 고난을 망각하고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하게 될 때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내가 둘째를 낳기 싫은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우선 내 그릇이 그 정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고통을 잘 참고 인내심이 강한 편이라 임신과 출산까지는 어떻게든 해보겠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육아의 세계에서

나는 여전히 '아기가 왜 이러지?'라는 답이 있을 리가 없는 물음을 반복하고 있다.

졸리다고 칭얼대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배고프다고 악을 쓰는 아기를 재우려다 결국은 내가 먼저 울게 되는 바보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아기가 둘이 되면 힘듦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 이상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교사 부부는 맞벌이를 해도 월급이 아주 많진 않지만 우리 가족은 '읍'에 살기 때문에

세 식구가 적당히 먹고살면서 하고 싶은 것의 대부분은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가족이 넷이 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아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가족이 늘어나면 우리의 외식과 취미생활은 3분의 2로 줄여야 하고,

40이 되기 전에 멋진 외제차를 한번 타보겠다는 나의 버킷리스트는

'60이 되기 전에'로 정정해야 할 것이다.

아이의 책을 살 때, 운동이나 예술을 경험시켜주고 싶을 때

하나일 때보다는 조금 더 망설이게 될 것이다.

원래 가족계획을 이렇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골프, 필라테스, 여행, 포르쉐 등)과 둘째 아이 중에

어떤 것이 더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따져보게 된다.

혹자는 어떻게 아이가 주는 기쁨을 저런 것들 따위와 비교할 수 있냐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다가 후회하는 것은 훨씬 더 끔찍한 일이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첫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연년생에 가까운 남동생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은 그 녀석이 끼어있다.

재밌었던 추억도 많고, 든든했던 적도 간혹 있었겠지만

이상하게 동생 때문에 분하고 억울하고 부담이 되었던 일들만 잘 기억이 난다.

동생은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매번 빼앗고 싶어 했고, 어딜 가든지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심지어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늘 동생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고 그 존재를 잊은 적이 없다.

나는 우리 아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런 마음을 몰랐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더 작고 귀여운 존재가 등장하여 그 관심을 빼앗기는 것도 싫고,

우리 아들이 동생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억지로 양보를 해야 하는 게 싫다.


그 밖에도 내가 둘을 낳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혹시라도 둘째가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 둘을 감당할 에너지가 없다는 점,

인간은 쉴 새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존재인지라 환경오염이 걱정된다는 점,

지금 이 아이에게 해주는 만큼 똑같이 둘째 아이에게도 해줄 자신이 없다는 점,

둘째를 낳으면 몸을 다시 회복하는 건 훨씬 힘들 것 같아서 겁이 나는 점 등이 있다.


아이를 둘 이상 낳으라는 사람들은

외동아이는 외롭다, 아이가 이기적으로 자랄 수 있다,

동생이 없으면 부모가 계속 놀아줘야 한다,

부모가 아프거나 죽었을 경우를 혼자 감당하게 해야 한다 등의 이유를 이야기한다.


아직 내 생각을 바꿀 만큼 매력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고,

아기도 많이 어리기 때문에

지금 이 아이나 열심히 잘 키우자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뭐 어느 날 갑자기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 들면 그때 이 글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아야지.

그리고 가족회의를 열어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


아가야, 엄마가 가족회의를 열면 신중하게 이야기해야해! 너의 인생이 달린 문제야.



<남편의 참견>

그럼 나는 G바게ㄴ... 아! 아닙니다. 제가 무슨소릴....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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