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도 춥지도 않고, 바람도 선선한 게 걱정하기 딱 좋은 날이다.
나는 '미리부터없는걱정사서하기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은 무려 30여 년 간 나와 함께 해왔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나는 걱정이 많고 겁이 많았다.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들어봤지만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걱정은 걱정을 낳고,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문다.
작고 사소한 걱정이 눈덩이처럼 커져 잠들지 못한 밤들이 많았다.
나의 걱정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내일 친구를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약속에 나오지 못하면 어쩌지?
그 친구가 약속에 나오지 못하는 건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일까?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이나 행동이 그 친구를 불편하게 한 건 없었을까?...
내일이 중간고사인데 내가 시험 범위를 잘못 안 거면 어쩌지?
시험 시간표는 확신한 건가? 답안지에 제대로 표기를 못하면 어쩌지?
갑자기 내일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알람이 고장 나면? 알람이 제대로 되어 있나?...
어린 시절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하셨다.
너처럼 발을 동동 구르다간 될 일도 안 되겠다고...
나는 의식적으로 느긋하고 여유롭게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해왔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병세는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인생 최대의 걱정 덩어리가 생겨 버렸다!
아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걱정들이 나를 덮쳐 버렸다.
이제는 걱정을 사서 하지 않아도 되고, 걱정을 대놓고 할 수 있어서 좋다.
아기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걱정 그 자체였다.
'걱정'을 형상화하면 '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기와 관련된 걱정은 무한 증식되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진화한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에는 '나 때문에 아기가 잘못되면 어쩌지?'
아기가 태어나고 있을 때에는 '아기가 이래도 괜찮나?' 하는 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요즘 나의 걱정은
아기 몸무게, 아기 수유량, 아기의 수면습관,
아기의 피부, 아기의 두상, 아기의 다리 모양
아기가 다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기가 살아갈 지구의 환경오염,
아기가 살아갈 시대의 사회와 직업 변화 등등
하나씩 차근차근 걱정하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내 많고 많은 걱정들이 무색하게,
아니 어쩌면 나의 걱정들을 맛있게 받아먹고
아기는 쑥쑥 자라고 있다.
걱정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걱정하는 만큼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기 때문에 큰 사고나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때 나는 머리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하기 때문에
걱정하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걱정을 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걱정할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내가 현재 매우 평안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걱정도 팔자라더니 역시 나는 걱정이 체질에 맞나 보다.
하지만 걱정이 많은 사람은
현재의 상황과 삶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행복한 순간에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불행을 미리 걱정하느라 만끽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바보같기도 하고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이 병만큼은 제발 우리 아들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아들이 나의 '미리부터없는걱정사서하기병'을 닮을까 그것도 걱정이다.
<남편의 참견>
난 긍정이 체질. 그래서 우린 짝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