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Oct 18. 2021

지구별에 온 걸 환영해!

너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구나.

요즘 부쩍 날씨가 추워져서 네가 행여나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돼.

어제는 너의 숨소리, 너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한 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

오늘도 평소처럼 밝게 웃는 걸 보니 아픈 곳은 없어 보여 다행이야.


아가야, 엄마는 너를 처음 만난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작고 뜨겁고 말캉거리는 너를 처음 안았을 때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에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단다.


별나라를 여행하다가 엄마 아빠를 만나러 내려온 우리 아기

이 세상에는 힘든 일들이 너무 많지?

밥도 먹어야 하고, 신기한 것 투성이인데 자꾸 졸리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느라 온 몸이 아프기도 하고,

이제는 이가 잇몸을 뚫고 나오느라 짜증이 나기도 하고...

게다가 엄마 아빠는 목욕하자, 로션 바르자, 옷 갈아 입자 귀찮은 일만 시키는 것 같지 않니?


그래도 요즘에는 부쩍 지구별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대견해.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 무슨 꿈을 꾸었는지 옹알옹알 이야기를 하고, 

엄마 아빠처럼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준비를 하느라 매일 부지런히 연습을 하더구나.


아들아, 엄마는 네가 아프지 않고 지금처럼 밝게 자랐으면 좋겠어.

걱정 많고 겁 많은 엄마를 닮지 말고, 유쾌하고 다정하고 해맑게

네가 그렇게 자랄 수 있게 도와줄게.


엄마 아빠는 네가 우리 집에 오기 훨씬 전부터 

너와 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며 설렜었어.

이제 재밌는 일들을 하나씩 함께 하면서 매일을 소중하게 아껴 쓸 거야.


너를 많이 웃게 해주고 싶어.

세상을 살다 보면 슬프고 힘든 일들도 많겠지.

그래도 속상하고 외로울 때 엄마 아빠를 떠올리면 용기가 생겨서 

무슨 일이든지 자신 있게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의 예쁜 이름처럼 딱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아들! 아직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엄마가 생각보다 잘하고 있지 않니?

엄마가 처음인데도 이 정도면 엄청 괜찮은 편일 거야.

엄마도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어. 

엄마가 잘할 수 있는 건 하루 온종일 네 생각만 해서 그래!

그러니까 가끔 엄마 잘하고 있다고 토닥토닥 칭찬도 해주고 그래.


벌써 너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보내고 있네.

내년이면 너는 걷고 뛰고 넘어지고 다치고 던지고 망가뜨리고 

작은 몸으로 우리 집을 점령하겠지?

뭐가 됐든 엄마랑 함께 다 해보자.

널 보면 엄마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


넌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태어난 아기야.

세상 가장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과 다르게 그러지 못할 때도 많겠지만

항상 네 옆에 있어주고, 널 재미있게 해 줄게. 약속해.

엄마는 약속한 거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키는 사람인 거 너도 알지?


하고 싶은 말은 아직 많은데 낮잠에서 깬 네가 엄마를 찾는구나.

이 편지는 네가 글을 읽을 수 있을 때 엄마랑 함께 읽자. 안녕!


아가야, 이 예쁜 손으로 신나는 일 많이 해!


<남편의 참견>

아들! 아들이라는 말로 너를 부를 때마다 아빠는 늘 가슴이 저릿해. 

우리에게 와 주어서 고맙다. 엄마, 아빠의 마음이 모아져 아들이 이 세상에 오게 되었지. 

힘들게 온 만큼 세상에 오길 잘 했다는 마음이 들 수 있게 해주고 싶어.

하지만 한편에는 아들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는 책임감도 있단다. 

아빠는 이 책임감과 아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있어.

아들! '잘' 사는 것과 '재미있게' 사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야. 

아빠는 아들이 '재미있게 잘'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그 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찾기 위해서 노력 중이야. 

아마 아들과 아빠가 함께 찾아 나가야 할 수도 있어. 

그리고 답을 찾다보면 우리는 그 답에 가깝게 살아가고 있을거야. 

우린 누구보다 '재미있게 잘' 살고 있을거야.

누구보다 '재미있게 잘' 살아갈 우리 아들에게, '재미있게 잘' 살고 싶은 아빠가

이전 24화 걱정이 체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