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파 하기 좋은 달을 찾아라'라는 한 가지 문제를 클리어한 뒤,
가장 중요하면서도 의미 없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낳을 것인가, 딸을 낳을 것인가.
이는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과 집안 분위기, 나의 삶의 방향까지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뜻대로 정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아들이 더 좋을지 딸이 더 좋을지는 남편과 나의 성격, 남편과 나의 개인적인 경험, 현재 우리나라의 성비 등을 고려하여 정하였다.
요즘은 여자 아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남아선호 사상'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많았던 남아의 수가 줄어들고 자연 상태에서의 성비로 바뀌었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여자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딸은 엄마의 평생 친구가 되어 딸이 있는 엄마들은 외롭지 않다고 한다. 또 부모님이 아프면 병원에 찾아오는 자식은 딸들 뿐이고 아들은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떠다녔다. 어쩌면 대부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1남 1녀 중 장녀인데 엄마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대상은 남동생보다는 나인 것 같았다. 또 부모님 걱정을 하거나 더 살갑게 구는 편은 대부분 내쪽인 듯하였다.
그런데 나는 자식에게 살갑게 챙김을 받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성격이다. 아직은 잘 모를 일이지만 나는 내 자식이 내 고민거리를 들어주기보다는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의 고민이나 외로움은 나와 내 남편,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어떤 역할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딸이든지 아들이든지 별 상관은 없었다. 혹시, '모두가 여자 아기를 원할 때 남자 아기를 낳으면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청개구리 같은 생각으로 아주 약간 남자아기를 갖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여자로서 겪어온 불편함 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딸이라서 차별하는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고, 운이 좋게도 학창 시절이나 직장에서 여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내 기억 속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여자로 살아가는 데 불편한 점은 어떤 큰 사건 사고같은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모든 생활 스며들어 있어서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여자 아이들의 교복은 치마로 되어 있었고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흰색의 속바지를 챙겨 입어야 했다. 남동생의 교복은 반바지였는데 저걸 입으면 이 속바지를 입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네를 타거나 뛰어놀 때 늘 신경은 교복 치마에 가있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져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바지 교복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마가 더 편해'라고 생각을 닫아버리던 소심한 학생이 되어버렸다.
중학생 무렵부터 친구들과 모여 놀기를 좋아했는데 조금만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곳은 귀갓길이 아주 안전한 편이었지만 해가 떨어진 뒤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몇 걸음에 한 번씩은 뒤를 돌아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중학생 때보다는 고등학생 때, 고등학생 때보다는 대학생 때 어두운 길을 가는 공포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음악을 듣더라도 한쪽 이어폰은 뺀 채로 주변의 소리에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취하곤 했다. 최근 여자 친구들에게 물으니 대부분이 같은 경험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다고 한다.
혹시나 하고 남편(키 183cm, 몸무게 9*kg)에게 물었다.
"밤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서웠던 적 있어?"
"집에 가는 길이 왜 무서워?" 당연한 대답이었다.
즐겁게 친구들과 놀고 가족들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서울 리가 없다. 나는 남편에게 밤에 집 앞 슈퍼에 나가는 일도,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도, 지하주차장에서 아파트로 올라오는 길도 매 순간이 긴장되는 시간들이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남편은 그제야 자신에게 당연한 일상이 여자들에게 공포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공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여자로서 또 다른 불편함은 없었을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여자의 일생에서 20년은 '생리와의 전쟁'인 것 같았다. 생리 전 1주일은 '생리 전 증후군'으로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거나 음식을 먹지 못하기도 하고 두통이나 복통을 겪는다. 또 생리 기간 중에는 찝찝함과 불쾌함을 견뎌야 하고, 생리통의 고통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남자로 태어났을 때의 불편함은 뭐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남편과 남동생, 주변 남사친들에게 물어보았다. 우선, 남편은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라 그다지 차별을 느꼈거나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장남인 그는 집안에서 여동생보다 자신에게 더 기대를 하고 부담을 주는 점이 힘들었다고 했다. 남자는 공부를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짐이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그 때문에 배우고 싶은 분야(예체능 계열)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주변의 남자 친구들은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자유를 뺏기고, 인내하고 억압받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 시기에 여학생들은 취업 준비를 하고 먼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또 아직까지도 사회의 분위기가 남자에게 가장으로서의 책무성을 더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와 결혼 생활에서의 책임감이 여자들보다 더 크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로 사는 것도, 남자로 사는 것도 다 힘들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겪은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인지라 나는 내가 만드는 새로운 생명체에게 내가 겪은 똑같은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 아기를 원할 때 우리는 틈새시장을 노려보자라는 생각, 운동을 좋아하고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성향, 나와 남편이 각자 경험한 바 등을 고려하여 깊이 고민을 하였다.
아기의 성별을 정하는 문제가 목표를 세우도 노력한다고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는 남자 아기를 갖기로 했다.
<남편의 참견>
아들이든 딸이든 분명 너무 예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