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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린 Aug 11. 2021

내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 이유

이제는 조금 변화를 꾀해야 할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감명 깊은 영상을 한 편 봤다.


 영상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 루틴 1주일, 몰입의 힘(https://www.youtube.com/watch?v=ViQx25FpRUg)>이었다. 보아하니, 오랜 시간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을 1주일 간 따라 해 보는 영상이었다. 영상 제목과 설명을 보고는 '맙소사, 정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은 나처럼 나사 풀린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빡센 루틴이라는 걸 하루키의 책을 통해 몇 번 접했기 때문이다.


 일단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은 이러하다. 참고로 장편 소설을 쓸 때의 루틴이다. 



 먼저 아침 4시에 일어나 즉시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약 5시간 정도 계속 원고만 쓴다. 분량은 잘 되든 안 되든 무조건 200자 원고지 20매를 쓴다고 한다.

원고를 다 쓰면 반드시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매일 평균 10km를 뛰거나 수영을 한다. 둘 다 할 때도 있다. 그는 30년 넘게 매일 10km를 뛰어왔다.

운동을 마친 뒤, 점심쯤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레코드점에 가거나 요리를 한다.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며, 다음날 업무 준비를 해둔다.


(책을 뒤적뒤적 계속 찾고만 있을 수 없어서 기사(https://president.jp/articles/-/39770?page=2)를 참고해서 작성해 보았다.)


 일단 4시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허들이 높다. 일어나자마자 5시간이나 계속 원고만 쓰는 일은 더 허들이 높다.  졸리진 않은 건가? 200자 원고자 20매, 즉 4,000자를 쓰는 건 언뜻 보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글쓰기는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 '매일' 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라.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더니, 여기서 정점이 왔다. 1시간 운동은 그럴 수 있다 쳐도, 평균 10km를 뛰는 건 상상만 해도 힘들어 보인다. 1시간 동안 걷는 것도 아니고 뛴다니. 그리고 이걸 따라 하겠다고?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으로 영상을 감상했다. 물론 이 루틴을 시험해본 유튜버 돌돌콩 님은 자신에 맞춰 루틴을 변형하셨다. 돌돌콩 님은 전업작가가 아니시기 때문에 원고 집필 대신 독서와 글쓰기를 하셨고, 10km를 뛰는 것 대신에 아침에 최대한 많이 걸으려 하셨다. 그리고 퇴근 후에 매일 요가를 하셨다고. 


 이 영상을 보고 참 여러 감정을 느꼈다. 대부분 신선한 충격과 비슷한 감정이었다.('신선한 충격' 같은 말은 내 기준 너무 오글거려서 쓰고 싶지 않은데 이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이런 루틴을 따라 할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충격이었고, 정말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인상 깊었다.(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 책에서 하루키의 루틴을 보고, '뭐야, 초인인가?'하고 넘겨버렸는데, 하루키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루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웃기지, 하루키는 사람이 아닌가? 그보다 훨씬 엄격한 루틴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을 텐데. 생활 습관에 대한 나의 감각이 참 무르기도 하다.


이외에도 돌돌콩 님의 영상을 몇 편 더 봤는데, 꽤 좋은 영상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제일 생각해볼 만했던 부분은 어느 학자가 어느 저서에서 말했다던(역시 기억하지 못했다) 문장이었는데, 보통 우리는 휴식을 하면 여유롭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금 힘들고 바쁘고 규칙적으로 일할 때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약 9년 간의 나의 프리랜서 라이프를 되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중간에 정말 짧게 입사 퇴사를 반복하며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처음 3년, 아니 5년 간은 프리랜서 라이프가 꽤 괜찮았고 만족스러웠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일할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꽤 적성에 맞았다. 지금도 적성에 맞고 만족스러운 건 사실이다. 내가 원한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5년이 지난 뒤부터는 시간 관리와 체력 관리의 필요성이 예전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이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가끔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자신의 휴식 시간을 간섭하지 않는 일요일이 계속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월화수목금토가 있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토가 없다면, 과연 일요일이 귀중한 휴일일 수 있을까? 일요일만 계속되면 아마 처음 1달은 축제의 연속일 것이며, 3달이나 6개월쯤은 매일이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태로 5년이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뭔가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5년 차가 지난 시점부터 나름 관리를 해왔다. 9시에 일어나서 오전에 간단하게 두유와 커피를 마시고,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좀 보다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때때로 운동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일 외에는 무언가를 '매일 꾸준히'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거 같다. (하긴, 일이 없을 땐 일을 안 하니 그것도 '매일 꾸준'한 건 아니다.) 운동은 간헐적으로 지속하는 편이고(3개월에 1달씩 하는 편이다), 독서는 종종 무분별하게 한다. 글쓰기도 때때로 하지만, 꾸준히 하진 않는다.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닌 셈이다. 즉, 나는 무언가를 대체로 '간헐적으로 지속'하는 편이다.

 뭐, 이 '간헐적 지속' 상태도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돌돌콩 님에게 자극도 받았겠다, 지금보다 생활에 탄력을 주면 어떨까?


 그래서 용기와 의지를 발휘해, 오늘은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났다. 괜찮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일어난 뒤에도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진 않았다. 그리고 요가매트를 펴고 TV로 유튜브를 보며 아침 스트레칭을 했다. 스트레칭을 한 뒤에는 동네 산책로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30분 간 걸었다. 6시밖에 안 된 시간이었는데도 산책로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 빼고 다 운동했나 봐! 그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 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하니 내가 굉장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하루키가 아침에 원고를 쓴다는 걸 떠올리고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 넘게 글을 쓰고 있다. 


 스트레칭-산책-샤워-독서-글쓰기. 이렇게 아침을 보내니, 아직 9시 밖에 안 됐지만 오늘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는 거 같아 고양감이 들었다. 꽤 괜찮은데? 앞으로도 반복해볼까? 하지만 아직 다짐하기에는 이르다. 사실 아까 산책할 때는 다 포기하고 집에 들어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까지는 어찌어찌하겠는데, 산책은 좀 힘들었다. 아마 내일부터는 링 피트나 유튜브 홈트로 산책을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 산책이 더 나은 거 같긴 한데...


 과연 며칠이나 이 시도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하나쯤은 건지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일도 의지를 발휘해 보자고 자신을 격려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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