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연습#3.(220228)
회사에서의 업무는 항상 나에게 자괴감을 준다.
사람을 그리라는 요청, 아니 명령을 받았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최소한 미술학원이라도 다녔다면 모를까.. 사람을 어떻게 그리지. 지시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머리를 그리고, 목을. 몸통을 그리고 거기에 팔과 다리를 붙이면 된다고 했다. 이걸 단순 명료하다고 해야 하나. 지시하는 상사는 자신의 설명에 만족했는지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곧바로 이어서, 긴박한 목소리로 조속한 완료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바쁜 일이었던가. 흰 도화지를 꺼내서 생각한다. 머리. 목이랑 몸통을 잇고, 팔과 다리를 이렇게 붙이면 되겠지? 하고.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이다. 나름의 고심 끝에 사람을 그려갔다. 반듯하게, 깔끔하게,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일을 시킨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 가며, 한 땀. 한 땀. 한 땀. 완벽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질책받을 정도도 아니었다. 차마 내가 입 밖으론 내뱉지 못했지만, 칭찬이나 탄성을 자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나. 당연하게도. 결과는 전면 수정이었다.
우선 내가 동그랗게 그려낸 사람의 머리가. 동그래선 안된다고 했다. 팔은 길쭉해서도 안되고, 다리는 더더더 길고, 더 빠르기 위해서 동그래야 한다고 했다. 흰색 바탕도 문제였다. 펜의 굵기도, 그림자의 방향도 틀렸으니 수정이 필요하단다. 알겠다고 했다. 나의 저작물. 내 새끼 앞에서 치욕스럽게도, 내 새끼에 대한, 아니 어쩌면 내 생각, 더 나아가 나에 대한 비난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이 바람으로 다리는 둥그렇게, 세모난 머리에는 긴 뿔이 달렸고, 짧아진 팔은 양옆으로 서너 개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나의 작품이, 나의 고민과 내 이야기를. 누군가의 고민 없는 편견으로. 무지와 무시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괴상해지고 있지만, 괴상하리만큼 순종적으로 그들의 억지를 따른다.
나의 직업은 회사원, 나는 마법을 전공했다. 어떠한 억지라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무리한 요구일지언정 거부하는 일은 없다. 바퀴 달린 인간을 그렸다. 아니. 바퀴 달리고 뿔이 났고, 양쪽 승모에 눈이 하나씩 달려서 더 이상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형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런 괴물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릴게 뻔하다. 어쩌면 누가 원작자냐고 추궁 받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 또 한 번 마법을 부리면 된다. 나의 존재를 스스로 거세하고 익명으로 내 존재를 대신해 버리면 그만이다. 불가능이 있어도 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나는. 마법을 전공한 회사원이다.
문제가 생겼던 건 그날 밤이었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처럼, 나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퇴근길에, 신호 대기를 하던 차에 발견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내 얼굴에 이거 있잖아. 이거 고양이수염 같지 않아? 거기에다가 내 발바닥. 이거 까만 게 완전히 당나귀 발굽하고 똑같잖아” 집에 있어야 마땅한 시간이었고, 나 또한 집에 귀가해야 마땅한 시간이었으니까. 우린 같은 공간에서 함께 내가 변화됨에 놀라 자빠져야 마땅했다. 만. 아내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답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외모의 변화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함께 어색한 정적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아내를 찾는다거나, 옷을 갈아입는다 따위의 일들이 전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저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수염 끄트머리에 집중했다. 인기척 없는 집의 정적, 소리 없이 길어지는 수염은 점점 낚싯줄처럼 반질반질하고, 억센 탄성을 갖춰갔다. 코와 눈 주변에 거뭇한 색소가 올라올 때 즈음, 지금 당장 아내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자기, 이봐, 야. 지금 어딨냐. 까지. 외쳤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없었다. 전화를 했고, 문자도 남겼지만 답은 없었다. 공허한 외침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나의 변화도 곧 싫증 났다. 시시했다. 외형의 변화로 당혹스러우면서도 놀라웠던 순간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상황을 인식하자, 어떠한 고통이나 자극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무했다.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
두어 시간이 지났을 즈음. 수염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좌우가 대칭되는 까만 털만큼이나 진한 색으로 눈과 코가 변색되었다. 발바닥은 완벽히 발굽으로 변모했고, 무릎관절은 180도 돌아갔다. 내 외모는 몇 시간 만에 당나귀 다리, 고양이수염에, 판다 같은 눈두덩이로 변했다. 그나마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얼굴을 제외한 상반신 정도였다. 동물의 머리와 하반신, 인간의 상반신이 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은. 회사에서 억지로 만들어야만 했던 나의 익명의 작품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난 ‘어떠한 무리수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마법사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내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음을, 다만 외형이 변했다고 가정했다. 노트북을 열고 워드를 켰다. 외형이 변화된 아내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을 적어냈고, PPT를 열어 여러 조각으로 아내의 형상을 그렸다. 진한 갈색빛의 등껍질, 그 속에 기름종이처럼 부스럭. 바스락거리는 몇 겹의 얇은 날개가 달린 하늘소 같은 몸통, 작은 몸집, 관자놀이 바로 위쪽에 대칭되는 길쭉한 더듬이, 그 아래, 아내의 얼굴. 한 땀. 한 땀. 그려 넣었다. 기괴했지만, 결과물은 질책이나 칭찬, 수정 요구와 억지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온전한 나만의 결과물을 감상했다. 아내는 벌레로 변했을 뿐,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고말고, 아내는 그리 쉽게 사라질 리 없다.
또다시 몇 시간이 흐르자 노트북 모니터 상단에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갔다. 긴 더듬이가 인상적인, 진한 갈색빛이 감도는 등껍질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미소를 짓는 아내의 얼굴을 띈, 벌레였다. 역시 그랬다. 아내는 나처럼, 외형만 변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아내가 함께한다고 생각하니까 일전의 지루함이 걷히고 자극적인 당혹감이 밀려왔다. 아내에게 내가 겪었던 감정을. 내가 아내를 그리며 떠올렸던 기대에 대해서 울먹이며 쏟아내고 싶었다. 기괴하게 변해버린 나와 아내의 외모는, 온전한 아내와 나의 존재와 관계라는 개념 속에서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상상을 통해 억지를 타당한 논리로 만들어내고, 사라진 아내도 벌레로 재구성하는 반인반수인 나는. 그로테스크해진 일상과 함께 어떠한 무리수라도 그저 그렇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