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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Nov 04. 2021

기다리며

2021. 연습#8.(211103)

Composition No. I, with Red and Black (1929)  Piet Mondrian

  “나는 말이야..”


  “넌 말이 아니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말’ 말이야”     


  “오히려 넌 소에 가까워, 말보단.”     


  “역시, 대화가 안된다. 그만 얘기하자, 우리”     



  둘은 등을 마주했다. 대화가 그쳤다. 서로의 얼굴을 정확히 반대로 돌려놓고 한쪽은 한숨을 쉬고, 또 다른 한쪽은 고개를 떨궜다. 얇은 한숨도, 가벼운 공기마저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 없어 보인다. 말 그대로 숨 막히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10분, 아니 실제로는 3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시간. 그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우리 지금, 여기서 왜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있지?”     


  “기다리기로 했잖아.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고”     


  “아. 그렇지 참”     



  둘의 대화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화려한 입체 카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펼치기 전까진 보통 카드보다 화려하지도, 재밌지도 않지만, 펼쳐지는 순간 그 화려함과 재치에 ‘헉’하는 놀라움을 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다시금 왼편의 그가 말을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 이해가 되긴 했는데, 왜 내가 기다리겠다고 했는지 당초의 다짐이 기억나질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왜 내가 너랑 같이 기다리자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다시 대화가 끊겼다. 알 수 없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 당혹감, 의아함, 그러다 의욕 없이 다시금 수긍하는 태도. 기록을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반복되던 패턴은 이번에도 유사했다. 왼쪽의 그가 뭔가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말하려는 순간 까먹은 것처럼 시무룩해한다. 오른쪽의 그는 왼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가 여기 얼마나 있었지?”     


  “아마 한 시간. 아니 두... 세 시간? 잘 모르겠네? 그게 뭐가 중요해”     


  “그렇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다시 또 침묵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누구를 기다릴까. 아니. 무엇을 기다리는 중일까. 말 같지도 않은 대화가 끊기고 얼마 뒤에 다시 입을 뗀다.     



  “기다려야 할까?”     


  “기다려야지. 당연하고 말고”     


  “그렇겠지? 기다리자 그럼”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기다림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대화가 길어질 이유도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무작위로 찍어 놓은 점을 잇는 과정과 닮았다. 점을 잇는다는 목적은 납득되지만, 행위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처럼 말이다.     


  그 이후에도 ‘기다려야’ 한다는 무의미한 대화는 몇 번이나 오갔다. 수많은 반복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익혀진 행동, 그래서일까 더욱 무뎌지고 메말라진 그들의 감각이 느껴졌다.     



  “저번에 그가 언제 왔었지?”     


  “우리가 지금 다시 기다리고 있던 그때 즈음이었는데...”     


  “같이 기다렸던,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였나”     


  “아. 그 사람이 있었지. 그런데 그 사람은 어디 있나”     


  “그때 그가 왔었을 때, 그 사람이 사라졌지 아마”     


  “그럼 그가 그 사람이었던가”     


  “그러게, 아닐 수도 있고, 그래”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멍하게 먼 곳을 쳐다본다. 모조리 흰 바탕으로 둘러싸여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는 이곳은, 뭐 하나 집중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뭐라도 보고 있는 듯이,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흐트러진 둘의 대화를 복기하듯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는 누굴까. 이들이 믿는 것처럼 그는 진짜 올까? 왜 그를 기다리는 걸까. 그가 기다리라 했을까. 어쩌면 그는 기다리라 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선(善)일까. 혹은 즐거움(樂), 아니면 악(惡)이나, 기다림의 괴로움(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나, 이 모든 것이지 않을까. 아직도, 여전히 추측만 하고 있는 나처럼,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밝고 무의미한 공간 속에서 하염없이, 하릴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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