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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Jan 20. 2022

마지막 샐러리맨

2022. 연습#2.(220119)

#01. 김 부장의 출근


  오늘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일이 기다리는 전쟁터, 매일 같은 직장으로 매일 같이 향하지만, 어제처럼 오늘도 비장하다. 보고서를 만들었고, 보고했지만 호된 불호령이 떨어졌던 꿈이 찜찜하지만 ‘꿈은 현실의 반대다’를 주문처럼 되뇌며 준비를 서두른다. 샤워와 아침 식사는 필수라기보단, 의식에 가깝다. 성스러운 업무를 시작하기 위한 정갈함. 낡은 서류 가방에 더 낡은 명함 지갑을 잘 챙겨 넣고, 무광의 갈색 구두를 신으며 현관 옆 거울 앞으로 섰다. 탄탄하게 다려진 옷깃과 붉은 넥타이를 매만지고는, 이제 출발.


  현관을 나서면, 그때부터 사무실 자리까지의 여정은 무의식에 가깝다. 주차된 차를 찾고, 다시 주차를 하는 과정에 잡다한 생각이나 고민은 사치였다. 간결하고 깔끔하게 항상 같은 주차 라인에 운전석 반대편 뒷바퀴가 덜컹하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쑥 밀어 넣는다. 매일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9시에 업무가 시작한다면, 늦어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체득한 삶의 방식은 습관이 되었고, 그는 웬만해선 절대 늦지 않는다.           




#02. 이 과장의 출근


  불쾌한 시선을 느꼈다. 31분. 지각이라고 생각할까. 태그를 찍으며, “인증되었습니다” 소리가, 정적. 아니 제대로 떠들썩해 보지도 못한 공간의 질서를 허물어 버린다. ‘안녕하세요’ 최대한 작은 소리로, 흐트러진 질서를 다시금 세우려고 애썼다. 무심한 듯 예의를 지키며, 그는 “어”하고 답했다. 그의 대답은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고요의 질서를 깨뜨린 나를 질타하지 않고, 최대한 자신의 화를 드러내지 않음과 동시에 담백하게. 인사에 응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재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람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고 했던가. 그의 맘을 알아차렸음에도 불안하고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요즘 들어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처럼, 어제 퇴근 전에 한 번 더 입력했던 그 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고통스럽다. 몇 번이나 실수했더니 재부팅을 하란다. 50분. 사내 시스템 로그인이 늦을까 걱정하며,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03. 승기의 출근     


  취업이 힘들었다고 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힘들었겠지. 그래도 내가 더 힘들었을걸? 55분. 늦지 않았다. 팀장님은 눈치를 주던데, 뭐. 계약서에 보란 듯이 9시라고 적혀있는 근무 시작 시간엔 늦지 않았으니 문제없다. “안녕하세요”, 팀장 앞으로 가서 인사했다. “응”하고 대꾸한다. 과장에겐 가볍게 끄덕했다. 무시했다. 무안하게. 뭔가에 열중하는 척하며, 내가 못마땅한지 가끔씩 인사를 해도 못 본 척하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냥 넘어간다. 나중에 한 번 걸려만 봐라.


  취직 과정은 험난했다. 모두가 경력을 원했다. 추리소설같이 반전 있는 경험도 듣길 원했고, 남들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 않을 만한 영어성적도 필요했다. 경력을 쌓는다고 중소기업에서 1년, 공공기관에 인턴도 1년 버텼다. 자소서는 주변 지인부터 시작해서 온라인 첨삭까지 받았다. 영어는 학교 다닐 때부터 꾸준하게 준비해왔다. 도합 6년을 꼬박, 더 좋은 직장. 좀 더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겠다는 목표에 정진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온 회사는 만족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까. 연봉은 보통, 일은 보통, 상사들은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꼰대들이다. 돈, 일, 사람 중에 하나라도 괜찮으면 다닐만한 직장이라고 했다. 싫은 게 한 가지, 보통이 두 개니까. 하나에 절반씩, 총 1점. 종합해보면 그럭저럭 다닐만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본다.           




#01+@. 흔들림 없이 불편한 김 부장


  직원들이 늦었다. 하나는 30분이 넘어서, 또 하나는 9시가 돼서야 출근했다. 그나마 이 과장은 눈치라도 보는데, 얼마 전에 입사한 막내는 눈치도 보지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한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다. 이런 행동이, 직원의 근태를 지적하는 행위가 직장 내 갑질이라고 했다. 갑질이라니. 나의 근태가 잘못됐다면, 누구라도 날 욕해도 좋다. 그때도 갑질이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회사를 가만히 보면, 엉망이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시대일까. 사람일까. 젊은 직원들은 더 이상 셔츠를 입지 않는다. 심지어 얼마 전엔, 찢어진 청바지까지 입고 다니는 직원을 본 적도 있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가치도 아주 가관이다. 신입직원부터 나보다 더 연로하신 선배들까지 두 명 이상이 모이면, 주식에 코인에, 부동산 얘기만 한다. 몇 명의 지인들도 어김없이 꺼낸 이야기는 주식이었다. 피했다. 직장은 성스럽다. 좀 과장되긴 하지만 직장은 돈보단, 더 큰, 더 중요한 실현을 위한 곳이다. 이상적이지만 직업은 ‘자아’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     

  이사님의 회의가 소집됐다. 우리 부서의 실적이 좋지 않다고 한 소릴 들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마땅히 더 열심히, 더 좋은 결과를 냈어야 했는데, 그런 결과를 내지 못한 건. 내 탓이고, 부원들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해이해진 기강을 다시 잡아야겠다고 생각만 했는데, 이젠 확실하게 움직여야 할 때다. 작지만 단호한 말투로, 이 과장과 막내를 불러 앉혔다. “내가 말이야,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03+@. 사람이 확실히 싫다


  부장이 씩씩거리면서, 입술 양 끝에 하얀 거품을 물어가면서, 안경을 두 번 세 번 치켜올리고, 조용하게, 그래서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야단을 쳤다. 정확히 집중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격앙된 표정과 이 과장의 굳은 얼굴을 짐작해보건대 확실히 야단을 치는 게 맞았다. 말꼬리가 올라갈 때를 맞춰 끄덕였다. 대답하라고 할 때 대답했다. 어쨌든 퇴근시간 전에는 끝날 호통이니까. 2시간 남았다.




#02+@. 다 싫다 이 과장


  말처럼 다 싫다. 하. 부장은 또, 넋두리처럼, 훈계를 늘어놓았다. 감정을 쏟아냈다. 오랫동안 학습된 분노와 질책이 오묘하게 섞였고, 쉼표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뒤죽박죽 화를 냈다.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라고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잘도 늘어놨다. 게 중엔 정말 불필요한 이야기, 또 가끔은 선을 넘고, 인격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말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수년 동안 수백 번도 넘게 반복된 질책과 원망에 감정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난 바싹 튀겨져 딱딱하게 쪼그라든 어묵처럼 말없이 얼굴만 붉혔다.


  꽤나 오랜 시간의 고통 끝에 ‘실적이 좋지 않아서’라는 요지를 파악했다. 30분 넘어서 출근했으니까, 셔츠를 입지 않아서, 칼퇴근이 어째서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우리의 행위 하나하가 전부 잘못되었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미세한 우리의 행동을 막힘없이 말하는 걸 보면, 일거수일투족을 어딘가에 정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년도 넘게 회사를 다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돈은 항상 부족하고, 일은 익숙해졌지만 전문성 따윈 없다고 느껴졌다. 막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끄덕끄덕 고개를 흔드는데, 왜 이 시점에서 고개를 흔드는지 모르겠다. 졸고 있나.


 요즘, 나에게 직장은. 도망치거나 떠나고 싶어도, 관성이나 습관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오직 감시와 처벌을 위한 판옵티콘에 불과한 건 아닐까.




#01+@@. 악역을 맡은 부장의 슬픔     


 ‘후~’련 하다고 해야 할까. 한 소릴. 한따까리했더니, 어정쩡하고 헐렁했던 분위기가. 공기가. 한결 달라졌다. 상쾌하다고 해야 할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가끔씩은 따끔한 소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맘이 편치 않다. 선배들도 그랬을 테고, 나도 그렇다. 예전엔 이렇게 호통을 치고 나면 으레 ‘소주나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억지로 소주를 넘겨가며, 동지애를 다졌다. 가끔. 너무 서운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놈들도 있었고, 고래고래 잘하겠다고 소리 지르는 녀석도 있었다. 그때가 그립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회식은 엄두도 못 낸다. 그 점이 아쉽다. 소통을 위한 시간과 여건이 부족한 점. 그래서일까. 우리가 서로 함께해도 매번 외로워지는 상황 또한 아쉽고, 또, 부하 직원들의 흐트러진 정신상태를 동료애로 재무장하고, 오늘의 설움을 갈무리해주지 못해 영 찜찜하다.


  악역을 맡은 자는 언제나 외롭고, 매번 씁쓸하지만, 절대 빠져선 안 되는 역할이라 확신한다. 요즘은 ‘악역’이 없다. 철저하게 너와 나의 관계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연대감 따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회사가 이모양이지’. 회사는 회사답게, 부장은 부장답게. 조금 엄격하더라도 가끔은 악역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만. 나의 일, 나의 자리, 나의 의무와 책임을 지킬 수 있다. 회사는 삶이고, 과거이자 현재이면서. 무엇보다. 회사는 나의. 나는 회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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