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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Apr 07. 2020

납땜의 시대

김자까의 84번째 오분 글쓰기

사연: 막일하다가 같이 일하는 분이
시간 좀 때우다가 가자는 말을 했는데
문득 그 말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납땜도 아니고 때워지는 걸까요


오분 글쓰기란 덧글로 사연을 남겨주신
신청자분의 이야기를 각색해 새로운 소
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오분 글쓰기 시이작->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다. 친구는 언젠가 불의의 사고를 겪어 그 수습을 하느라 5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는데 자신이 그 세월을 허송세월 하며 보낸 게 못내 아쉽다고
했다. 친구는 그것을 가지고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리면
시간이 무슨 사람이라도 된 건가 싶다
시간을 잃다니 시간은 그저 흐르거나 지나가는 것 아니었나?

그게 아니면 시간을 잃는다는 표현은
마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신나게
달리다 넘어진 '시간'의 무릎이 까져 피가 나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그러니까… 원래 시간은 아주 옛날 옛
적에는 24시간을 빈틈없이 사용해야만
하는 그런 무언가였을지 모르겠다.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누구에게나 공평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밥주걱으로 밥알
하나까지 떼어먹듯 밤이 되어 눈을 감을 때까지 아주 알뜰 살뜰히 사용해야 하는 그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시간이 넘어져 피를 흘리고 나자

(예를 들면 전쟁이라던지 천재지변이라 던지를 겪어)

그때부터 시간에는 구멍이 생겨
하염없이 피가 흘러내렸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시간을 때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인간의 측은지심이 발동했을 것 같다)

그들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주로 코를 파거나
구름을 세거나
나뭇가지로 땅을 긁거나
마스크를 벗었다 다시 쓰거나
목 스트레칭을 하거나
용건 없이 전화를 하거나
각질을 떼어내거나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간을 때우는 도구 중
휴대폰 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휴대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 도구는 구멍 난 시간을 완벽하게
메꾸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고 가는 전철의 건너편 청년
또한 휴대폰 삼매경이다.
그와 나는 한 시간 전부터 같은 공기
를 공유하며 숨을 나누어 쉬었지만
그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같은 칸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그들은 뭔가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것
처럼 골똘히 휴대폰을 보고 있다.
마치 고도로 집중을 해서 철과 철을
잇는 납땜 기술자처럼.

그 모습을 보니 미래의 시대는 인공
지능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때우는 핸드폰 납땜의 시대가 먼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멍 난 시간을 메꾸지 않으면 누구나
시간을 공평하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간의 상처를 메우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시간을 때우고 나면

그렇게 되면… 시간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시간을 더 많이 잃은 사람
들이 눈빛을 다시 맞대로 서로 함께
하는 순간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순간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시간을 때우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보다 시간의 상처가 더욱 벌어진다면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구멍 난 시간을 때울 도리가 없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 납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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