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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Apr 07. 2020

가장 멀리 보는 방법

김자까의 83번째 오분 글쓰기

사연: 나는 왜 이렇게 한 치 앞만 보고
이 순간에 집착하며 살까?
멀리 보는 지혜를 가지고 싶다.


오분 글쓰기란 덧글로 사연을 남겨주신
분의 이야기를 각색해 새로운 소설을
지어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오분 글쓰기 시작->

'음 이거 말고요'

'아니라고요? 찾으시는 걸 정확하게
말씀해주셔야 찾을 수 있어요'

'멀리 보는 하이라이트… 요?'

'얼마나요? 뭐 한 100미터?'

'아뇨 1000미터, 아니다 한 1킬로 미
터, 아냐 아예 도로 끝까지 볼 수
있는 걸로다가!'

정비소 직원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역시 안 되겠죠?'

'아뇨 있습니다. 당연히 있죠. 없을리가요. 천리안 같은 걸 찾으시는구나 적당한 게 있어요. 한번 사용해보시죠'

직원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창고를
뒤적이더니 곧 라이트 한 쌍을 들고
와서 내 차의 라이트를 바꿔 끼웠다.

며칠 후, 차를 타고 도로에 올라서
운전을 하다 보니 곧 밤이 되었다.

근데 라이트를 켜자
범퍼 앞에서 희미한 빛이 깜박이다가
펑 소리를 내며 꺼졌다.
(연기도 잠깐 피어올랐다)

그제야 나는 기억했다.
며칠 전 술을 진탕 먹고 정신이 몽롱
한 상태에서 자동차 수리 센터를 방문
한 기억이 난 것이다.
내가 먼 곳까지 보는 라이트를 달아
달라고 헛소리를 한 것 같은데


그 직원은 내 멱살을 잡지 않고
오냐오냐 하며 이상한 라이트를
달아준 게 기억났다.

그리고 그놈이 해놓은 일을 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알아챈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라이트를 켜 환해야 할 도로가 새까맣다.

급한 일을 처리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이대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엑셀에서 발을 떼지는 못하고
조금 더 운전하다가
반대쪽 차량과 아찔하게 비껴가 사고
를 피한 뒤에야 숨을 몰아쉬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복잡하다. 빨리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시간에 쫓기니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하나라도 끝내 놓으면 나을까
싶어 서둘러 가고 있었는데
고장 난 라이트가 나를 멈춰 세운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될까?
마음은 급하고 이럴 땐 정말
모든 결과를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
독수리처럼 저 높은 하늘에 떠서
앞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으면…

하지만 아무리 상상해봐도
인간은 한 치 앞 밖에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시커먼 어둠 속에
앉아 있으려니 도로 옆 풀 숲에서
벌레소리가 들렸다.
차 문을 내리고 소리를 들었다.
스멀스멀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기억났다.
나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더라?

'잠깐! 이것도 가지고 가세요 손님'

고장 난 라이트를 달아 준 그 괴짜
직원이 했던 말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그때 내 차에 고장 난 하이라이트
를 달아주고 조수석 서랍에도 무언가를 넣었다.

몸을 기울여 서랍을 뒤지니 돌돌 만 지도가 나왔다.
헛웃음이 터진다.
이건 고속도로 지도도 아니고 한국
지도도 아니고 무려 세계 지도다.

지도에는 펭수 같은 캐릭터 하나가
가고 싶은 나라에 표시를 하라며
해맑게 웃으며 춤을 추고 있다.
모나미 펜을 찾아가고 싶은 나라에
표시를 했다.

그리고 다시 가만히 앉아 앞을 바라봤다.
그런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달빛이 강해지는 건지
차 앞의 도로가 점점 환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평소엔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던 미래가 보였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환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아이러니.
괴짜 직원은 정말 내 차에 천리안이라도 달아놓은 걸까?

나는 아예 눈을 질끈 감았다.

오분 글쓰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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