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통터치 육아휴직 기간에 쓴 수양록
살 만한 시간이었다.
올해 말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
‘내 미래를 위해서 어떤 투자 자산을 산다.’ 나랑 관련이 먼 이야기라 생각했었다. 썩 복잡하기도 했고, 현생이 바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어진 일을 열렬히 하다 보면 막연히 보상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장독대에 돈을 넣어 땅에 묻어놓듯이 예금만 했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했으나 흘려 들었다. 잃은 것이 없으니 괜찮지 않느냐 되려 따지기도 했다. 그 모습은 평범하게 살아온 내 삼십여 년을 보여주는 표상이었다.
시간을 쓰는 방법도 매한가지, 삶이 대체적으로 그러했다. 온갖 까칠한 척은 다 했지만 실제로는 무난하기 그지없었다. 도전 정신이 부족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의 경계가 혼탁했다. 타인의 욕망을 좇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착각했다. 물론 말로는 못할 말이 없었다. 생활이 안정이 되면 다시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실은 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저당 잡는 데에 죄책감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했던 것 같다.
그러다 부동산 광풍이 관통했다. 코로나발 코스피 등락을 지켜보았다. 세상이 갑자기 급속도로 바뀌는 것 같아 초조해졌다. ‘이제라도 뭘 해야 하나’. 불안한 마음에 또 다른 이들의 말이 고파졌다. 밤새도록 해외 주식 관련 유튜브를 봤다. 점심시간이면 직장 동료들 틈에서 코인과 NFT의 미래에 대해 떠들어댔다. ‘벼락 거지’라는 폭력적인 신조어를 인용해 가며 과거를 한탄하고 훗날을 걱정했다. 유리멘탈인 나에게는 실로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 우리 가족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의외의 현상이 발생했다. 나는 되려 차분해졌다. 머릿속 걱정 뭉테기가 증폭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라져 갔다. 잡념들이 심플하게 정리되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이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건강 같은 기본적인 것들. 우선 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녕해져야 했다. 아내를 더 존중해야겠다고도 다짐했다. 한동안은 결연에 찬 장수(將帥)처럼 행동했다. 지인들은 제발 오버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신생아 트림을 시키며 ‘투자 자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시간이었다. 미래에 가장 가치 있을 자산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라는 시간만 한 것이 없었다. 금전적인 손해라고만 여겼던 ‘육아 휴직’이라는 제도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손실이 아니었다. 이건 기회비용이라는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투자 기회였다. 운이 좋다고 하기에는 안타깝지만,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시점이었다. 팬데믹과 아내의 임신기간에 동네만 열심히 돌아다닌 덕에 단골집도 제법 생겼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실제 휴직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휴직계를 내는 것부터가 고행이었다. 그래도 스스로의 행복과 가족의 안위에 대한 심도 있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사유가 남았다. 관성처럼 달려온 삶을 잠시 멈췄다. 그 브레이크 덕에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적을 이야기는 그 시절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구매한 이 시간들을 닳도록 아껴 쓰면서 파생된 생각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셋이서 함께하게 된 두 번째 해, 아이도 부부 관계도, 나 스스로도 생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들은 육아일기이자 르포이면서 일종의 자기 수양록이기도 하다. 아울러 우리 가족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사진첩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시나 살(Buy) 만한 시간이었고, 살(Live) 만한 시간이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난 올해 말, 꼭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