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201-240204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Mike Tyson,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방어전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The Times and Democrat』, 1987. 8. 19)
별 거 아니었다. 성공적인 첫 주였다.
미안하다, 거짓말이다. 정확히 단 이틀이 걸렸다. 이거 만만하지 않다고 느끼는 데엔 48시간이면 충분했다. 물론 힘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그런 연유로 유산소 운동도 반년 전부터 틈틈이 해왔었다. 내가 맥을 잘못 집었을 뿐이다. 몸만 고될 것이라 예측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오만이었다. 체력은 디폴트값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었다. 한국 축구에서 항상 말하는 그것, 투혼이 필요했다. 계획을 이케이케 미리 잘 세우면 순조로울 것이라는 희망부터 버려야 했다.
첫날부터 미션이 많았다. 1월 31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머릿속으로 체크리스트를 펼쳐 보았다. 예방 접종(일본뇌염 1 차), 입소할 어린이집 질의 전화(근엄한 목소리로), 육아종합지원센터 방문해서 장난감 대여(알뜰한 이미지 추가), 몇 개의 주식 종목 체크 후 매수(근로소득의 감소 보완) 등 굵직한 업무들이 떠올랐다. 그것을 해내는 상상 속의 멋진 아빠는 웃고 있었다. 실제와는 다르게 왠지 몸도 다부져 보였다. 그렇게 쓸데없이 흥분하며 잠을 설쳤다.
외출 준비를 마치면 어김없이 아이의 기저귀가 부풀어 올랐다. ‘똥을 이렇게 자주 싼다고?’ 내가 읊조린 육아 휴직기간의 첫 혼잣말이었다. 다년간 회사생활을 통해 터득한 스킬을 꺼냈다. 정신 승리. 밖에서 그러지 않았음에 안도하기로 했다. ‘효녀구만’ 두 번째 혼잣말이었다. 문제는 예약된 시간에 늦을 것 같은 초조함까지는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띠 위에 앉히고 나면 어김없이 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찾아왔다. ‘돌겠네’ 세 번째 혼잣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종종 그랬었던 것 같다. 힘이 들어가면 되려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태산 같은 미션을 마주했을 때 보통 그런 일이 벌어졌다. 알량한 계획들을 촘촘히 짜서 극복해 보려다가 핵주먹을 명치에 맞곤 했다. 육아도 과연 그런 류의 과업이 분명했다. 조금 더 흙밭에서 굴러야 함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마음속 흥분의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것이 이번주의 성과라면 성과. (속 편해서 좋겠다)
마이크 타이슨에 처맞은 얼굴이 된 금요일 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맥주를 한 잔 마셨다. 내 계획엔 ‘오랜만에 출근한 아내의 회사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기’도 있었다. 짐작하셨겠지만 나 혼자 똥 얘기만 한창 했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마냥 육아 진짜 힘들다고 튀어나온 입으로 나불거렸다. 그래도 아기는 너무 귀여웠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실실거렸다. 술이 달았다. 왠지 다시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240201(목) : 아빠와 둘이 보낸 첫 날,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가려다 실패했다. 퇴근한 엄마를 무척 반겼다.
240202(금) : 아빠와 홍연길의 플라스틱팜에서 목도리를, 해성상회에서 달걀을 사왔다.
240203(토) : 엄마아빠와 사러가에 장보러 다녀왔다. 며칠 전 구매한 아기전용의자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240204(일) : 엄마아빠와 홍제천 산책을 했다. 154수다 라는 까페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