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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Jun 19. 2024

육아휴직 4주 차 : 멋있는 사나이

아빠 육아 : 240219-240225


  청와대에 와있다. 나는 정부에서 주최한 ‘저출산고령화 시대, 국민이 주목해야 할 우수 참고 사례 초청행사’에 남성 육아휴직 부문 대표로 초청받았다. 허나 미리 준비했던 소감문 출력지를 잃어버렸다. 오금이 저려온다. 멀리서 아이도 크게 울고 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당연했다. 그 건 꿈이었기 때문이다. 아기 침대로 건너가 보채는 아이를 토닥이며 생각했다. 내가 고이 숨겨놓았던 감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란 인간, 육아휴직 이거 멋져 보이고 싶어서 한 것도 약간 있구나?’


 종종 아이와 함께 구립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간다. 이곳의 부모 동반 플레이룸이 육아 맛집이다. 시설도 훌륭하고, 전담 모니터링 선생님도 계신다. 꽤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무료다. 안 갈 이유가 없다. 다만 나에겐 이유가 하나 더 있을 뿐. “오, 아빠랑 왔구나!” 이 멘트를 들으러 간다. 황홀하다. 고양된 기분으로 아빠랑 온 아이가 또 있는지 스캔한다. 없으면 안도한다. 한껏 뿌듯함을 즐긴다. 그 와중에 내 안의 사대주의는 외국인 아빠를 논외로 친다. 이 옹졸한 마음은 늘 바깥을 향해있다. 맞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사회부과 완벽주의자, 이 사람들은 사실 완벽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 그러니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다 보니 액면만 완벽주의자인 거예요. 속은 따라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많거든요. 그러니까 안팎이 항상 불일치한 거예요. (중략) 눈이 항상 외면을 바라봤던 사람, 이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들이 심리적인 우울이나 불안과도 관련성이 높습니다. 정말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는 꾸물거리지도 않아요. (이동귀 교수 멘트 요약,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33회, 2024. 2. 28)




 정말 다행인 건 그 이후로 (평일 낮에 홀로 아이를 데리고 온) 한국인 아버님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도 나는 대단한 선구자가 아니었다. 더 나은 아빠도 분명 아니었다. 이상적인 가상의 아버지의 모습을 혼자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그에 닿지 않음을 괴로워했다. 타인을 시샘하고 깎아내리기를 일삼았다. 나는 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로 마음먹은 건 어쩌면 필연이었다. 나는 건강해야 했다.


 육아 휴직도 고민의 숙성이 필요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꼬박 일 년을 더 고심했다. 이미 결심한 말을 꺼내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이번 프로젝트는 끝내고 얘기를 해야 하나. 인사고과를 받기 전에 말하면 불이익이 있을까. 친한 동료들에게는 미리 귀띔해 두어야 하나. 도대체 언제 말해야 내가 배신자처럼 덜 느껴질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악몽을 꾸곤 했다. 고무적인 건 그 과정을 겪으며 본질에 접근을 해보았다는 점이다. 세금 같은 부수적 감정들을 체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택했다. 누군가의 강요는 없었다.


 맞다. 어쩌면 멋진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다만 그동안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진 않았을까. 육아휴직계를 낸 결과를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실 다른 사람은 나에게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는 것도 이제 안다. 좋은 뜻을 품고 노력했던 그 과정만 스스로 격려해 주기로 했다. 더군다나 육아라는 과업은 잘하고 못하는 걸 평가하기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아닌가. 그 채점표는 오로지 내 마음속에 있다. 올해 역시 긴 과정 중 일부다. 길거리의 수백 명의 아빠들이 수천 가지의 번뇌를 안고 수만 번 선택을 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서야 나는 그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240219(월) : 전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다. 주차장에서 두꺼비를 처음 보았다.

240220(화) : 아빠와 문화센터에 갔다. 처음으로 백화점 유아차를 빌려 타봤다.

240221(수) : 오후에 아빠와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갔다. 오는 길엔 래인카페에 들렀다.

240222(목) : 눈이 많이 쌓여 아빠와 집에서 놀다가 집 근처 도서관에 잠시 다녀왔다. 눈구경 실컷 했다.

240223(금) : 아침산책을 했다. 티치에서 아빠가 샌드위치 먹는 걸 구경했다. 저녁엔 집에 아빠 친구들이 왔다. 아빠 생일축하파티에 참석했다.

240224(토) : 조경규 작가님 사인회에 참석. 작가님 딸까지 있어서 창녕 조씨 다섯 명이 모인 순간이었다.

240225(일) : 엄마아빠와 산책을 하다가 까루나 카페에 들렀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했다. 모닝빵 서비스를 받았다. 오후엔 헤어더쿠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를 잘랐다. 다정한 마음에 가서 엄마아빠 외식하는 걸 구경했다.



나의 고뇌를 알고 있느냐? 사실 몰라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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