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연길 Jun 26. 2024

육아휴직 5주 차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빠육아 : 240226-240303



 나도 한 마리의 동물임을 깨닫고 있다. 보호 본능. 아직도 낯간지러운 그 단어, 나도 갖고 태어났나 보다. 평생 지밖에 모르는 줄 알았던 나도 지새끼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발뒤꿈치로 눈두덩이를 찍혀도 웃음이 나온다. 신기하다. 밖에선 그 표정이 백팔십도 달라진다는 것도 웃긴다. 역시 보호 본능 때문이다. 한 마리 야생동물이 되어 이빨을 살짝 드러내며 사주경계를 한다. 예쁘다며 불쑥 아이를 쓰다듬거나 꾸짖는(보통 양말의 부재를 지탄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가 가장 난감하다. 감사와 경계 그리고 관심과 간섭 사이,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출산 세태 속 우리 가족이 사회의 소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유아차가 다닐 수 없는 도로 환경(도보권 제한), 노 키즈존(방문 제한) 등을 볼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다. 모든 가정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기에 이해는 간다. 하지만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매번 스타필드나 현대백화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에게도 다양한 환경을 보여주고 싶은데 답답하다. 적어도 차별받는 정서적 경험은 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도 된다. 사람 마음이 이렇다. 누구도 우리를 터치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와 은연중에 대우받고 싶은 심정이 매번 대치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복고풍 콘텐츠에서만 볼 수 있는 개념일까. 현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를 안고 산책을 하던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간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거리가 반짝였다. 우리 부부의 날카로운 긴장감도 조금씩 해빙되길 기대했다. 그러고 보니 아기가 조용하다. 품에서 잠이 들었나 보다. 우리 부부는 그 기운을 감지하고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내가 먼저 설레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카페에 가자는 신호다. 아기에겐 미안하지만, 소란을 피울까 늘상 노심초사인지라 이런 타이밍을 은근히 기다린다. 솔직히 나도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부산스럽게 굴면 짜증이 났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내 마음가짐에 기인하여 타인에게 주눅이 든다. 자업자득이다.


 카페의 문방울종이 흔들리지 않게, 주문은 최대한 속삭이면서도 명확하게, 자리에 착석할 때는 0.5배속으로 마치 고양이의 움직임과 비슷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휴..” 임무를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짧게 뱉었다. 그리고 아기를 바라보았다. “엥, 언제 깼어?” 꼭 머루와 닮은 아이의 눈이 말똥말똥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얼굴에 ‘어떡하지’라는 글자를 쓴 채로 서로를 다시 마주 보았다. 다행히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잠에서 깬 아이를 사장님께서 환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떠들면서 이야기하잖아요” 불안한 마음을 놓으라고 한번 더 생각해서 말해주셨을 문장이었다. 그 말이 며칠 동안이나 가슴에 남아서 감사의 씨앗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받았던 배려들이 그제야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고맙습니다”라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일본어 문장은 사실 직역하면

“(베풀어 주신 은혜로 신세를 입는 일이)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라는 돌려 말하는 어려운 표현이 된다.




 그동안 이 문장처럼 고마운 걸 고맙다고 순수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야생동물로 살아가며 경계심에 천착하다 보니 사회가 선사하는 사랑에 어색해했던 건 아닐까. 심지어 육아용품을 공짜로 나눠주는 친구들에게도 쩔쩔맸었다. 신세짐이 불편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마음이 닫혀있었다. 그만큼 피해는 털끝만큼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이제는 그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누군가를 돌보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한다는 점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히피가 아니어도 사랑을 논할 수 있다. 아이유와 존 레넌의 노랫말도 귀기울여볼 수 있다. 더 이상 새 날라가는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동네분들에게 여러모로 따뜻한 신세를 지고 있다. 그 기분이 불편하지만은 않다. 더 이상 빚으로 남겨놓지 말고 빛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한 이 시간들이 고향의 정서로 남기를 바란다. 






240226(월) : 중무장하고 아빠와 아침 홍제천 산책, 열린 공간 연희 들림, 놀이터에서 엄마 마중

240227(화) : 아빠 생일이지만, 어김없이 문화센터에 갔다. 저녁엔 아빠 엄마와 케이크초를 같이 불었다.

240228(수) : 아빠와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홍연길 갤러리에서 그림 구경했다.

240229(목) : 엄마가 휴가를 냈고, 어린이집 OT에 같이 갔다. 벨라보스코에서 간식을 먹었다.

240301(금) : 오후에 꽃 그리는 아이에 가서 선율이와 놀았다.

240302(토) : 엄마와 남양주 외갓집에 갔다. 다산프리미엄아웃렛에 갔다. 저녁엔 세 가족 합체.

240303(일) : 엄마, 아빠와 집에서 쉬었다. 어린이집 갈 준비를 했다. 



눈녹던 그 날 마셨던 커피를 찍어두었다.



이전 06화 육아휴직 4주 차 : 멋있는 사나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