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304-240310
이번 주는 매일 눈물바다로 원양어선을 타고 간다.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맞추어 아이와 분리연습 중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5분부터 시작했다. 금요일엔 한 시간 남짓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체계적으로 이행하고 있지만, 고역도 이런 고역이 있을까 싶다. 아이는 점심도 거르고 품에 안겨서 잠을 자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 부모와 첫 이별이다. 생후 일 년이 넘도록 일분일초도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잠시만 안녕을 외쳤지만 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원을 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셋이 뭉쳐있는 시간을 늘리려 했다. 아이와 함께 아내의 직장 근처로 갔다. 일기는 그때 운전을 하며 음성메모로 남긴 생각들을 윤색한 글이다. 서쪽으로 가는 길이라 노을이 살짝 걸리기 시작했다. 룸미러로 뒷 좌석을 보니 아이가 주황색 햇살을 받으며 자고 있었다. 카시트가 다소 불편해 보였다. 갑자기 참아온 눈물이 났다.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었다. 갑자기 이별 택시가 된 채로 자유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그러고 보니 노래와는 다르게 내가 기사 아저씨라 자문자답이다.
아침에 보았던 아이의 표정이 시시때때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오열을 한다. 기본적으로는 두려움의 감정이 보인다. 그 이면에는 원망이 섞여 있다. 아빠와 나쁜 경험의 기억이 쌓이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조차도 내 감정 중심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건 누구보다도 아이다. 슬퍼할 겨를 없이 달래줘야 한다. 인정머리 없는 성격의 내가 첫 등원을 시켜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내는 더 힘들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육아휴직을 해서 다행이다. 안도의 의미가 처음으로 쌓였다. 등원을 시키고선 어린이집 주변을 아이돌 사생팬처럼 맴돌며 쓴 문장이다.
이상하게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90년대 발라드 노래 가사처럼 오바스러운 상상일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죽는 날을 떠올려본다. ‘언젠가 내가 딸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얘가 이런 표정으로 울고 있으려나’ 이딴 망상을 하며 나의 건강을 다짐한다. 최대한 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아이가 강건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 이 정도면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정신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영원한 집이 될 수 없다. 신체적으로 영속성을 지니기 힘들다. 어떤 교육전문가는 반대로 아이는 언젠가 품 안을 떠나갈 터이니 귀한 손님처럼 여기며 거리감을 유지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떤 형태로도 우린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손잡고 등원하면서 보았던 골목길의 꽃이라든지 해질 무렵 뒷 좌석에서 본 아빠의 뒤통수를 기억 못 해도 좋다. 따뜻한 느낌만 마음속에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이 일기를 본다면 조금이라도 든든해하기를 당부한다.
우리 부모님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240311(월) : 어린이집 첫 분리 연습, 많이 울었다. 집에 와서 자다가 오후에 뇌염 예방접종을 맞으러 갔다.
240312(화) : 어린이집에서 울어서 점심도 거르고 낮잠을 잤다. 까루나 카페 포틀럭 파티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 아기띠에서 소변이 새었지만 즐거웠다.
240313(수) : 어린이집 가기 전 홍제천 산책을 하며 샌드위치(티치)에 들렀다. 오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에 놀러 와서 놀았다. (낙원 칼국수, 카페 B101 방문)
240314(목) : 아빠와 도서관 들렀다가 어린이집 등원했다. 오후에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 들렀다가 엄마를 만나러 김포 롯데몰로 가서 외식을 했다.
240315(금) : 하원을 하고 아빠와 도서관에 다녀왔다. 저녁에 스노우 어플로 엄마아빠와 재밌게 놀았다.
240316(토) : 엄마아빠와 홍연길 산책을 했다. 열린공간연희에 다녀왔다. 저녁엔 시아 언니가 놀러 와서 신기한 놀이터에 같이 갔다.
240317(일) :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엄마아빠와 하루종일 집에서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