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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Jul 10. 2024

육아휴직 8주 차 : 술 끊는 걸 끊었던 나에게

아빠 육아 : 240318-240324



  “나는 내 딸이랑 내 가족을 위해서 술은 안 마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준형(god의 그 쭈니형)이 한 말이다. 결혼 후에 포기해야 되는 것에 대한 그의 답변이었다. 물어본 사람은 예비 신랑 슬리피. 그 클립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어리석은 질문에만 눈이 갔다. 취미를 잃기 싫어 보이는 질의자의 표정이 답정너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결혼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미 내려버린 결정에서 오는 불안감을 달래주기라도 바라는 것일까. 그런 묘수는 있을 리가 없잖아. 결혼 4년 차이던 나는 엄지손가락을 시큰둥하게 스와이핑 하며 그들을 쓸어 올렸다.


  사실 결혼과 육아 관련한 블랙코미디 유머를 퍽 꺼리는 편이다.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자기 자신 외의 누군가가 슬퍼지는 개그는 싫다. 하물며 그게 가족이라면 더 못됐다고 느껴진다. 패턴은 보통 두 가지다. ‘야, 결혼이든 육아든 천천히 해. 네 인생은 그때부터 끝나는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유발하거나, 반대로 과하게 진지를 빨고 멋있는 척을 하며 자조를 야기하는 유형이 있는데 둘 다 별로다. 박준형의 답변은 후자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감흥이 없었다. 몇 년 후에 아이가 찾아온 지금에 와서야 그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고 있다.


  ‘포기가 아니라 선택일 수도 있겠구나’


  최근 주말마다 과음을 했다. 휴일엔 아내와 둘이서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가장 큰 이유, 누군가와 길게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작은 구실이었다. 어쩔 땐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주말을 기다리고 있다고도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꼭 음주를 했다. 긴장을 풀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었다. 그런데 꼭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다음 날 밀도 있는 시간을 앗아가고, 신체에도 부담을 주는 쾌락을 기어이 선택해야 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전주가 고향인 서울거주자다. 스무 살 때 상경했다. 그리고 선택해야만 했다. 그때는 서울에서 사는 삶을 잘 일구고 싶었다. 아쉽지만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갔다. 이 상황을 내가 고향을 포기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저 현실을 향한 의지의 개념이었을 뿐이다. 체념을 담은 명사가 아닌 열망을 담은 동사였다. 앞으로의 생에서 내가 가진 시간의 이용 방식도 그때와 같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술을 마시는 즐거움과 아이와 갖는 알찬 유대감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정리해 보니 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박준형(와썹맨)이 대답한 문장을 재차 읽는다. ‘안 마신다’라는 단어가 다시 보인다. 마실 수도 있지만 안 마시는 선택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 태도의 행간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자기 인생이 끝났다고 여기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주체적이다. 다른 삶으로 살아보는 문을 스스로 열었다. 그 문너머엔 포기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은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나도 더 이상 꽐라가 되지 않으리라. 다음 날 숙취로 괴로워하는 내 몸뚱이가 아이를 한번 더 안아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들지 않겠다. 그동안 참 한심했었다.




240318(월) : 어린이집 하원길에 잠들었다. 래인카페와 백련건강카페에 갔다.

240319(화) : 화가 모자를 쓰고 까루나 갤러리에 놀러 갔다. 오후에는 엄마회사로 놀러 갔다. 처음으로 레고를 샀다.

240320(수) : 하원길에 수선집에 들러 아빠의 기아타이거즈 유니폼을 아기 사이즈로 수선했다.

240321(목) : 어린이집 농구대에서 처음으로 덩크를 했다.

240322(금) : 엄마가 휴가를 내서 하원 후에 통의동에 놀러 갔다. 미스치프 전시를 봤다.

240323(토) : 아침에 홍제천 산책을 하고 연희동에 놀러 갔다. 까사드선주에서 빵을 사고 사러가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오후에는 예나가 놀러 와서 꽃 그리는 아이에 갔다가 집에서 놀았다.

240324(일) : 등산캐리어를 타고 엄마아빠와 안산 등산에 다녀왔다. 해브어밀에서 빵을 사고 티치에 들러 같이 담소를 나누었다.





일요일 낮 샌드위치 집 티치에서 아내와 담소를 나누며 맥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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