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805-240811
복직이 다가오고 있다. 다섯 달 남았다. 나는 컵에 물이 반절 밖에 안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유형의 사람이기에 벌써 초조하다. 알람을 꺼두었던 회사 사람들 채팅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실감이 난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지금이 너무 황홀하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을 되려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최근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보았다. 처절히도 허무한 영화였다. 히라야마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 남성의 일상을 그린 영화였다. 청소부가 직업인 그는 매일 수련하듯 일상을 보내며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삶을 산다. 하루하루를 퍼펙트하게 보낸다. 그런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운다. 그 표정이 묘했다. 아쉬운 행복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듯 끝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재를 뚜렷하게 한다.
코모레비(木漏れ日) : 나뭇잎 사이의 햇살,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2004)
끝은 무섭다. 미지의 세계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현재만 살 수는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수조의 물처럼 쌓아온 시간과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넘쳐흐를 수밖에 없다. 카르페디엠이건 코모레비건 간에 허무함을 피하기 위한 외침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착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잠시 잊는 것,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른들이 버릇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자신은 부지불식간에 늙어버린다는 한탄 섞인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체감되는 시간이 빠르다는 표현일 것이다. 뿌듯함과 허무함이 미묘하게 섞인 그 문장이 어쩔 땐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의 40대를 흘려보내고 싶진 않다. 아이를 챙기는 만큼 스스로도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담백한 헌신을 하고 싶다. 좋은 어른으로 발전해 가며 아이와 대화하고 싶다. 내비게이션 앱의 ‘현재위치’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살아가야 한다. 일기만 한 게 없다. 휴직이 끝나도 계속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끝이나 휴직의 끝은 별 거 아니다.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달력의 숫자에다가 의미 부여할 시간에 인생 전체의 끝을 연장시킬 방법은 없을지 골몰하는 게 낫다. 이 시절을 꾹꾹 눌러 담아 살고 싶어졌다. 응축된 시간을 펴보면 길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늘릴 수 있다. 내가 생각한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이다. 내가 우리 딸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긴 시간 함께 있어주고 싶다. 그 마음엔 끝이 없다.
240805(월) : 저녁에 까루나에서 열리는 전시의 오프닝 행사에 다녀왔다. 작가님을 열렬히 축하해 주고 왔다.
240806(화) : 어린이집 가는 게 조금 슬퍼서 거꾸로 놓은 바나나킥 같은 입이 되었다. 열이 좀 났다.
240807(수) : 엄마가 해준 밥을 잘 먹었다. 엄마도 늘 노심초사 걱정이다. 아빠와 등원길에 셀카를 잔뜩 찍었다.
240808(목) : 다른 길로 어린이집 등원을 해보았다. 하원하고선 까루나에 가서 예쁨을 듬뿍 받았다.
240809(금) : 어린이집을 안 갔다. 아빠와 안국데이트를 했다. 공예박물관에 갔다가 그 앞에서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집에서 낮잠을 자고 '베지스'로 가서 아빠와 단둘이 외식을 했다.
240810(토) : 아침에 홍제역 산책을 하다가 '다시, 밥'에서 식사를 다 같이 했다. 오후에는 아빠와 래인에 갔었고, 또 로다미 언니가 놀러 와서 '꽃 그리는 아이'에서 같이 수업도 듣고, '신연중학교'에 가서 뛰어놀기도 했다.
240811(일) : 하루종일 엄마, 아빠와 집에 있었다. 낮잠을 길게 잤다. 저녁엔 놀이터를 한 바퀴 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