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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Sep 18. 2024

육아휴직 27주 차 : 가훈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아빠 육아 : 240729-240804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충격적인 단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인성, 교육, 진흥, 법 무엇하나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네 단어의 믹스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체적으로 인성이 덜 되었단 걸 전제한다. 나라에서 공포한 법이다. 대통령령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비상회의를 했다. 가정교육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했다. 일단 프렌즈치킨에 전화를 걸어 반반을 주문했다. 명분이 좋다. 맥주 따를 컵을 냉동실에 넣으며 내가 말했다. “가훈을 정해볼까”


 ‘가훈’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확실히 있다. 꼰대 자가검열 레이더가 곤두섰다. 왠지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세로 앉아서 붓글씨로 써내려야 할 느낌이다. 누군가 떠들면 “어허!”라고 말하며 헛기침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만큼 강제성이 느껴진다. 기본적인 건 물론 가르쳐줘야 하겠지만, 우리 부부가 가진 개인적인 가치관을 아이에게 주입시킬 권리는 있는 것일까. 쓸데없는 걱정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벌써 두 캔째인 맥주 때문이다.


 윤리적인 기준은 개인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가훈이야말로 쓰려거든 연필로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나도 아내도 아이도 사회도 계속 변화할 텐데 절대적인 가치를 신봉하는 건 위험하진 않을까. 더군다나 큰 명제들은 자칫 두리뭉실해질 수도 있다. 뿌옇지만 착하디 착한 흐릿함, 그런 건 싫다. 난 명확한 게 좋다. 셋이서 자주 토론하며 가훈을 바꾸고 싶다. 치맥을 빈번하게 먹고 싶어 그런 건 아니다. 가족의 가치관보다는 생활양식, 그러니까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가족은 작고 귀여운 단위지만 충분히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검색해보면 둘 이상의 구성원들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자 그 과정 자체가 문화라고 한다. 가치관보다는 좀 더 살아 숨 쉬는 개념이다.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체화되는 태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 외할머니는 타인에게 민폐 끼치지 말라고 직접 얘기하신 적은 없었지만, 평생 몸으로 보여주셨다. 그 모습을 매일 보던 나는 카페에서 입을 닦은 휴지를 누군가 만지지 않도록 직접 쓰레기 통에 버린다. 여의치 않으면 주머니에 넣어가기도 한다. 이런 류의 행동은 씁쓸하게도 코로나 시절에 재조명을 받았다.


 그래서 가훈을 뭘로 정했냐. 맥주를 마신 탓에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일단 “파이팅!”이 가훈이다. HB연필로 연하게 써놓은 생각이다. 몇 주 후에 지우개로 지우고 다른 가훈을 쓰고 싶다. 가훈 자체는 우리 가족의 정체성이 아니다. 오히려 닳고 닳아지는 종이가 헤리티지가 되길 바란다. 열심히 대화해온 흔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의 인성교육을 잘 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없이 가벼운 가훈을 시절마다 즐기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려면 가벼운 몸도 필요하다. 맥주는 좀 줄이도록 하겠다.






240729(월) : 아빠와 둘이서 전주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기차에선 조금 답답했으나 잘 참아보았다.


240801(화) : 아빠와 하원을 하고 까루나 포틀럭파티에 갔다. 오늘은 말을 많이 해보았다. 귀여움을 듬뿍 받았다. 밤엔 드라이브겸 엄마 아빠와 당근마켓 거래현장에 다녀왔다.


240802(수) : 너무 더워서 등원 전, 하원 후 집에서 아빠와 놀았다. 저녁 먹고는 아파트 단지 산책도 했다. 이제 어린이처럼 걸을 수 있다.


240803(목) : 새로 산 가방을 들고 등원했다. 헤어질 때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아빠가 미안해하며 쩔쩔맸다. 하원을 하고선 국립현대미술관을 갔다. 전시를 보고 사직단에 가서 어복쟁면과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240804(금) : 오늘도 등원하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원을 하고선 하염없이 아빠와 엄마를 기다렸다.


240805(토) : 지호오빠, 쪼이언니와 만나는 날.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답십리로 놀러갔다. 키즈카페에 갔다가 오후에는 아파트 물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 아파트 주민은 아니지만, 물놀이 구역을 씹어먹었다.


240806(일) : 아침에 엄마품에 안겨 연희동에 다녀왔다. '쓰리어클락', '사러가마트'. 오후에는 신연중에서 뛰어놀았다. 저녁엔 지호오빠네집에 놓고온 신발을 찾으러 다녀왔다.




두려움 따위는 없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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