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715-240721
아내가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보름간의 세 가족 합숙훈련이 끝났다. 나의 육아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평일 데이타임, 이제 다시 혼자서 아이를 돌본다. 오늘 아침엔 우리 꼬마가 기분 좋게 일어나 침대에 앉아 웃고 있었다. 흠뻑 안아서 들어 올렸다. 밤 기저귀를 갈고 나서 다시 한 팔로 안았다. 엄마와 떨어져서 불편해진 아이의 심기가 땅으로 가라앉지 말길 바라며 내내 안고 있었다. 하부장의 식기를 꺼내며 오늘은 꼭 위로 옮겨 놓겠다는 다짐을 한다. 무릎이 시큰하다. 유아식을 삶으며 문득 생각한다. 아이가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무슨 일 하세요?(どんなしごとをしていますか)”
서교동에서 알현한 나가오카 겐메이씨가 갑자기 물어봤다. 평범한 질문을 받고서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아내가 갑작스런 저녁 회식이 생겨 아이를 안고 갈수 밖에 없었던 북토크의 사인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물쩡 대답했던 게 마음에 걸려 집에 오는 내내 체한 기분이 들었다. 슬쩍 말을 걸어보려 외워 놓은 팬심 가득한 멘트는 내뱉지도 못했다. 아이를 재우며 소화되지 않은 질문을 되새김질해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등을 토닥거리는 내 손의 리듬을 타고 마음 속에 파동이 일었다.
자기 성찰이 필요한데요. 이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서요. 저도 ‘마인드 마이너’라는 이름을 짓는데 6년 걸렸어요. 탐색과 방황의 시기가 필요합니다. 계속 고민해 보면 답은 있습니다. (송길영, 「유튜브 채널 십오야, 에그문화센터 컨텐츠(‘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에 대한 답변」, 2024. 3. 29)
나를 ‘어느 회사의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정리해 버리기엔 어쩐지 아쉽다. 돈을 벌고 있는 행위만 내가 하는 일로서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일까. 속물이니 마니를 논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른 일상들은 일이 될 수 없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 동네를 덕질하는 SNS도 운영하고 있고, 취미지만 어줍잖은 에세이도 쓰고 있다. 얼마 전엔 자비 출판이지만 책도 만들어 보았다. 일본어에 재미를 붙인 학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가사와 전업육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주마다 육아일기도 쓰고,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일들이 모여 유일한 나를 구성하고 있다.
나는 10년 전부터 ‘디자인 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해 왔다. (중략) 나는 세상이 말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표명이었다. 디자인 활동가라는 호칭을 떠올리고 내 안에서 디자인 활동가가 무엇인지 생각하자 그 ‘디자이너’가 사라졌다. (중략) 지금 같은 시대만큼 자신을 잃기 쉽고, 알지 못하게 되고, 나답게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도 없다. 그러므로 더욱 사람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가오카 겐메이,『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2024)
오늘도 일상이 모인다. 일단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한다. 생활은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항상 의미를 지닌다. 멕시코의 양파장수들은 누군가 아침부터 물건을 몽땅 사간다고 해도 일상을 뺏기기 싫어 불응한다고 한다. 나도 내 행위들의 귀결점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훌륭한 사람들처럼 신조어 직업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아니다. 일을 규정하는 범위를 넓히고 공통점을 꿰보자는 의지 정도가 생겼다. 어렵게 행차한 북토크에서 변화의 씨앗을 넘겨받아 기뻤다.
아이를 안고 저녁밥을 준비하며 다시 앉았다 일어선다. 데드리프트 운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럭키비키다. 자세가 달라진다. 아이고라는 소리 대신에 영차라는 소리가 나온다. 아이의 일상에 끌려다니고 있다고만 생각지 않을 일이다. 우리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그렇게 되길 원치 않는다. 그 일이 무엇이든 서로의 빛나는 일상의 동료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회사에서,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부단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응원한다. 나도 모쪼록 뭐라도 열심히 해보겠다. 너무 더우니 혼자 있어도 에어컨은 좀 틀고 있겠다.
240715(월) : 엄마의 새회사 첫 출근을 현관에서 응원했다. 오랜만에 아침에 엄마가 없어서 등원길에 오열을 했다. 하원을 하고선 유모차를 타고 해브어밀, 티치에 다녀왔다. 약간 피곤했지만 아빠가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유심히 보면서 참았다.
240716(화) : 오늘도 등원하며 울었지만 짧게 울었다. 하원 후에는 까루나 포틀럭 파티에 갔는데 비가 많이 와서 사장님이 차로 태워주셨다. 아빠와 씻고 누워서 한글 공부를 했다. 엄마가 계속 생각나서 울었다.
240717(수) :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하원하고 아빠차를 타고 집으로 곧장 와서 꽁냥꽁냥 놀았다.
240718(목) : 하원을 하고 아빠와 폭포라이브를 다녀왔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아빠와 로컬스티치에 갔다. 아빠 품에 안겨 나가오카겐메이 북토크를 듣고 왔다.
240719(금) : 퇴근한 엄마를 만나러 경복궁에 갔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계속 보챘다. 사직로라는 곳에 가서 어복쟁반을 먹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넘어져서 집으로 급히 귀가했다.
240720(토) : 아침에 병원에서 입술 치료를 하고 홍제동 산책을 했다. '다시, 밥'에서 키토김밥을 엄마아빠와 같이 먹었다. 래인에도 다녀왔다. 오후에는 이태원 디앤디파트먼트를 구경했다. '꾸잉'에 가서 쌀국수도 먹었다. 집에 와서는 아빠와 목욕을 했다.
240721(일) : 오전에 '서대문 도서관'에 다녀왔다. 오후에는 낮잠도 잘 겸 홍제동 산책을 했다. 엄마아빠는 생맥주를 한 잔 하고 싶어 했는데 결국 못 마셨다. 그래도 집에 와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고 놀았다. 씻기 전에는 신연중학교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고 자두를 먹었다.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