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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Sep 11. 2024

육아휴직 26주 차 : 파더 텅

아빠 육아 : 240722-240728



 아이의 언어 구사력이 부쩍 늘었다.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엽다는 표현밖에 못하는 내 언어 구사력이 안타깝지만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그 걸 고민하는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귀여움을 감탄하고 싶다. 얼마나 답답했을까도 싶다. 하루아침에 말을 하는 걸로 미루어보아 그동안 단어를 듣고 뜻을 떠올릴 수 있었으며, 감정에 대한 생각도 많았음이 분명하다. 다만 발음을 내뱉지 못했을 뿐이다. 사전 하나 없이 우리 세상으로 덜렁 온 아이, 오로지 주변 사람의 말들을 모아 어렵게 언어를 배우고 있는 친구다.


 그러기에 외국인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 중이다. 서로의 언어를 아직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 여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덜 답답하다. 조급함도 무의미해진다. 되려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어보게 된다. 다행히도 나는 알아듣기가 조금 용이하다. 아이의 말이 내 언어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기를 나와 지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말 그대로 파더 텅(Father tougue)이다. “아이고고고, 아빠 일어나고, 아빠 바지 입고, 빨리 가자” 내 행동도 드러난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늙은 애비는 매번 바지를 벗고선 자꾸 매트에 눕게 된다. 늘 굼뜨다.


기록이라도 부지런히 하고자 노력했다.

- 10개월 차 : 제일 먼저 말한 단어는 맘마다. 몇 일 후에 바로 엄마, 아빠도 불러주었다. 긍정과 부정을 표현하는 바디 랭귀지(끄덕끄덕)도 시작했다.

- 12개월 무렵 : 말할 수 있는 명사들이 늘어났다. 주로 음식이다. 까까를 필두로 반찬으로 먹는 당근, 버섯, 호박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치즈를 말할 때가 귀엽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기에 갈망의 눈빛을 담아 말했기 때문이다. “추주”와 가까운 발음.

- 13개월 차 : 원하는 걸 손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유격을 익혔다. 본인 이름 발음이 어려워 “은나꺼”라고 말했다. 아빠꺼, 엄마꺼도 금세 익혔다. 만지면 안 되는 것과 동의어다.

- 15개월 차 : 따라 할 수 있는 발음이 늘어나면서 말하는 명사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스펀지 같은 기억력이다. 아이가 이야기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많이 놀라던 시기다. 최대한 많은 걸 보여주고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어 열심히 돌아다녔다.

- 17개월 차 : 단어들의 결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란 꽃, 아빠 모자, 맘마 먹자’ 감탄사도 늘었다. ‘우와, 어머나, 아이고’

- 18개월 차 : 문장이 구성된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갑자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본인도 신나 보인다. 주변인의 호칭을 모두 익혀서 주어로 활용한다. 목적어와 동사 개념도 이해하고 있다. 명사들은 조합하거나 형용함으로써 표현을 풍부하게 만든다. 사물이나 상황의 관계성도 깨닫고 있는 듯하다. “왜?”라는 질문을 가르쳐주고 싶어 진다.


 신기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른인 나도 외국어를 이런 순서로 배운다. 생각해 볼 문제가 생겼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바람직한 언어 과외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지 체크가 필요했다. 문법이나 알파벳을 가르쳐주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적절한 예문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언어생활을 돌아보았지만, 결국 살펴볼 건 내 마음이었다. 내가 좋은 걸 보고 예쁜 생각을 해야만 예쁜 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칼'이라는 단어는 끔찍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과일을 예쁘게 잘라 주기도 하는 상황에서만 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느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새삼 어색하고 또 뿌듯하다.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앞으로도 수없이 하게 될 말인 걸 짐작하면서도 내뱉는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걷게 되었을 때보다 감개무량하다. 앞으로 나눌 이야기들과 주고받을 편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각이 줄곧 궁금했다. 조금씩 알 수 있어서 신난다. 아이의 언어생활도 보다 자세히 기록해주려 한다. 어떤 과정으로 마음의 모양을 빚어가고 있는지 관찰해주고 싶다. 이 글도 언젠가 자기 자신 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될 때 길잡이가 되는 지도가 되길 바란다.







240722(월) : 등원하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왔다. 아빠와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며 뛰어갔다. 하원 후에는 오랜만에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갔다. 조금 어색했다. 장난감을 빌려 일찍 퇴근한 엄마와 신나게 놀았다.


240723(화) : 아침에 많이 울었다. 비가 와서 차로 등원했다. 까루나에선 잘 놀았지만 아빠와 당근거래를 하러 가는 길은 너무 피곤하고 답답해서 울었다. 낮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240724(수) : 아침에 등원을 하다가 비가 왔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서 쓰고 갔다. 오늘도 아빠와 헤어질 때 조금 눈물이 났다. 오후에는 옥인동 육아센터에 갔다. 엄마가 근처에서 교육을 마치고 왔다. 다 같이 파스타 외식을 하고 집을 왔다.


240725(목) : 아침부터 아빠를 도와서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배출했다. 너무 더워서 육아종합지원센터에 또 갔다. 오후에는 유모차를 타고 집에 왔다. 너무 더워서 유모차가 편하다.


240726(금) : 하원 후에 서촌 나들이를 갔다. 아빠와 버스를 탔다. '무목적 갤러리'에서 'gyo'라는 브랜드의 팝업을 구경했다. 일찍 퇴근한 엄마와 만났다. '고트 델리'에서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비비엘 하우스'에 들렀다. '레디 투 킥' 오피스 마켓도 구경했다. '송암온반'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집에 왔다.


240727(토) : 아침에 홍제천 산책을 했다. '티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오후엔 아빠와 집에서 올림픽을 봤다. 신연중학교에 나가서 철봉을 따라 했다.


240728(일) : 아침엔 연희동 산책을 갔다. 한적한 '앤트러사이트'를 즐겼다. 오후에는 낮잠을 자고 또 신연중학교에 놀러 갔다.





아빠도 체력을 기를게. 드러누워서 입으로만 놀아주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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