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현 Nov 30. 2023

수치와 불빛

  이상하게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침대에만 누우면 세상에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사람이 또 없다.


  매일 같은 어둠이어도 불이 꺼진 순간에 맞이한 어둠만큼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짧으면 몇 초, 길면 몇 분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낮의 자신만만함이 숨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쩔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시간들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방 안의 어둠과 함께 눈을 감으면, 나의 어둠이 찾아왔다. 그 어둠 속에서 어제 일을 꺼내고 그저께 일을 꺼내고, 아주 오래전의 일까지 꺼낸다.



  잊고 싶은 수치와 좌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생각하고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하고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한다. 고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식의 뇌의 작용은 심리학적으로 ‘반추’라 한단다.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부정적 정서에 대한 반추가 작용하는 정도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인지적 재평가’ 작용의 정도는 낮다. 그러니까, 우울증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상태라면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보다 상황의 부정적 정서는 되새기고 다시 되새기면서도 그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려고 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직접 읽은 논문의 내용이다.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아무렴 어때, 같은 말들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나면 곧장 정신 승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조차 부끄러워지고 만다. 수치의 늪이란 게 그렇다.



  세상의 많은 일이 나의 통제를 벗어난다. 자신이 자신의 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이 세상에 서려 있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여기에 상처를 받는다. 그건 자기의 칼로 자기를 찌르는 상처.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일마저 나의 책임이 되어 버리고, 이 책임은 온전히 자기가 진다. 무슨 하늘을 지고 있는 아틀라스도 아니고.


  아틀라스가 지고 있는 하늘처럼 어둠이 자꾸만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서, 어느 날은 조명을 켜고 잤다. 뇌가 깨어있다고 오해하겠지, 그럼 각성한 뇌는 침대에 눕기 바로 직전의 나처럼 대단한 사람인 양 자신만만해질 것이다. 혹시 모른다. 그 기세로 괴로움을 물리쳐 버릴지. 그런데 생체 리듬엔 좋지 않겠지. 그럼에도 머릿속에 튀어 오르는 일반 상식의 아성이 차라리 괴로움에 울부짖는 혼자만의 소리보다 나았다.


  어떤 수치의 날에는 무엇이 더 나을까보다 덜 파괴적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이롭다. 그날도 여전히 최선을 다해 덜 파괴적인 선택을 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잠과 면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