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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현 Nov 23. 2023

프롤로그: 잠과 면역

 1.


  잠들지 못하는 여름의 날들. 지독하게 더운 공기만큼 나를 괴롭히는 건 불안이었다. 나는 잠에 들지 못하는 만큼 잠에서 깨지 못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눈을 감지 못하고,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워 눈을 뜨지 못했다.


   아무리 외면해도 당도하는 아침, 아무리 시간을 미뤄도 다가오는 늦은 밤. 어둠에 잠식되다가 빛에 웅크리기를 반복했다.


   해가 뜨고 나서야 참아 두었던 한숨을 내내 몰아쉬었다. 이른 새벽 바깥공기를 일부러 맞으면서, 말간 정신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면서, 나의 연료를 긁고 긁어 손에 잡히지 않던 일과들을 얼렁뚱땅 맺어버린 채. 인간의 몸으로 버티지 못하는 지경을 결코 만들어두고 늦은 오후가 되어 까무룩 잠에 들었다.


   나는 끝내 ‘생각하는’ 내가 두려워지고 말았다.



2.


  삶은 조각상처럼 깎여나갈수록 완성되는 것이었을까? 알아차린 때에는 이미 상처입는 것이 두려워졌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언젠가는 세상의 풍화에 깎여나가고, 언젠가는 인생의 침식에 생채기가 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러면 나는 이깟 조그만 상처에는 덜 아팠을 것 아닌가.


   외부의 공격에 본능적으로 맞서 싸우면 싸울수록 면역이 되겠지. 깎인 곳은 더 빨리 다듬어지고 상처가 난 곳은 더 빨리 아물겠지. 그렇지만, 언제 시작되는지 어떻게 끝나는지 어떤 것도 모른 채로 그저 움직이는 대로 싸워서 얻어내는 면역이란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나을 줄 알아도 다칠 때만큼은 아픈 것이다.


   그 아픔을 어찌할 바를 몰라 여름 내내 숨죽였다. 열기가 가시고 그 자리를 바람이 메꾸고 있다. 나만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아픔을 웅크린 채 계속 숨어들고만 있다.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듯이,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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