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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Sep 19. 2023

회사 밖 시급이 얼마인가요

회사 경험을 내 사업에 적용해 보는 법

선생님, 혹시 이 교육을 잘 받으면 회사 밖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제약회사 1년 차, 외부 강연을 들으러 나갔을 때다. 주니어급 직장인이 대상인 "효과적인 공급망 사슬 관리"라는 고리타분한 주제였다. 저마다 다른 회사에서 모인 영혼 없는 직장인들은 강의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딴 짓에 열심히었다. 1교시 때부터 야금야금 강사에게 질문하던 맨 앞줄에 앉은 50대 여성이 3교시까지 빈도를 높이더니 마침내 수업이 끝마치기 직전에 던진 질문이었다.


화려한 직장 경력을 가진 강사는 곤란하단 표정으로 말을 아끼다가 마침내 "그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효과적인 공급망 사슬은 큰 조직 단위에서 이뤄지는 업무 혁신이기에 실제로 회사 밖에서는 무용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이쪽 필드에 흥미를 가진다면 석, 박사 코스를 밟아서 밥벌이는 가능하겠지만 그건 아주 어려운 길이라고.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와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강의실이 한산해지자 그녀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의 느닷없는 학구열이 궁금해서 강의실을 지키며 귀를 기울였다.


사연은 이렇다. 그녀는 중소 제약 회사의 임원이다. 그런데 직장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분위기가 그렇다. 동기들은 짐 싼 지 오래다. 어떻게든 회사에 더 발 붙이고 싶은 그녀는 여러 교육 기관을 다닌다. 역량을 개발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자리를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그녀는 더 오래 직장을 다니고 싶다. 20년 넘게 쌓은 SCM 커리어도 아깝다. 강사에게 모든 패를 보이면서 이제는 거의 절박한 말투로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말을 돌려서 물었다.


그 배경을 다 듣자, 질문이 다르게 읽혔다.

(선생님, 나는 SCM직무를 잘하고, 오래 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이런 내가 회사 밖에 나가면 어찌 밥벌이를 해야 할까요?)

혹시 지금 듣는 교육을 잘 받으면, 회사 밖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걸까요?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찔했다.

회사 밖을 준비하지 않고 50이 됐을 때 내 모습이 꼭 그녀와 같을 것만 같아서.


회사 밖에서 일 찾기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고 나는 본격적으로 회사 밖에서 "내 일"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사이드잡에 대한 동기는 복합적이지만 그때의 장면이 가장 크다. "회사는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라는 막연한 구호가 실체화 돼자 가급적 젊고, 기회가 많을 때 작은 단위의 실험을 하고 싶었다. 그것 외에도 의미 없는 회사일 말고, 진짜로 내 일을 하면 어떨까 싶은 순전한 일에 대한 갈증과 소박하겠지만 아무튼 발생하게 될 부수입도 기대했다.


회사에서 배운 걸 적용하기

그리고, 나는 그 강사가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강사는 그녀에게 "비록 당신의 지난 회사 생활과 직무 경험은 화려하지만 회사 밖에선 무용하다"는 걸 젠틀하게 말했다. 그녀가 느낀 좌절감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됐다. 이유인즉슨 나도 그녀와 똑같은 SCM, 생산기획이란 커리어 패스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직무가 무용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회사는 돈을 버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조직이다. 그것이 기업 생존의 1법칙이니까. 따라서 회사를 다녀본 경험과 거기서 익힌 본인의 직무 스킬은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의 사업을 꾸리는데 적용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파티룸을 창업하면서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을 발견했다.


그렇게 2022년 12월, 일요일 오후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천천히 스트레스를 곱씹던 4년 차 제약회사 생산기획 직원은 난데없이 친구와 파티룸 / 렌탈스튜디오 창업을 결심한다.


장르는 직장인 철학 에세이

나는 이 브런치 북이 경영, 경제 혹은 자기 개발서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철학 에세이와 닮았으면 좋겠다.


데카르트 선생은 중요한 철학적 태도로 "끝없이 의심하기, 혹은 다르게 생각하기"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 책이 직장인들에게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이 됐으면 바란다. "혹시 내 직무도 어딘가 써먹을 구석이 있지 않을까?"와 같은 종류의 힌트를 말한다. 회사 경험이 범용성을 가져 회사 밖에서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기회를 본다면 모쪼록 지금 당장 회사 생활을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그 정도로만 기능한다 해도 이 기획이 보람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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