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본식 웨딩 스냅 면접
그리고 며칠 뒤,
한 군데에서 면접 보자는 연락이 왔다.
메일을 보낸 수많은 업체 중 한 곳이었다. 웨딩 본식 스냅 작가가 되는 것도 취준과 똑같아서 100번 탈락해도 1승만 얻으면 된다. 몇 년 전 오랫동안 취준 하면서 단련된 "탈락 경험"이 이런 기초 체력이 돼주다니. 뭐든 쓸모없는 경험 없다.
면접은 평일 저녁으로 잡혔다. 약속까지 3~4일 여유가 있어서 틈틈이 면접 볼 업체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살폈다. 구도, 캡션 문구, 사진 색감을 살폈다. 몰래 훔쳐보는 게 산업 스파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사진을 보면 볼수록 객기가 돌았다. 이 정도는 한두 번 나가보면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게다가 너무 천편일률적인 느낌의 사진들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면접 전에 여자친구에게 잔뜩 허세를 부렸다. 그 업체 사진이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지만 경험을 쌓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면접 날이 됐다. 단정한 옷을 골랐다. 아끼느라 잘 안 입은 코르덴 마이를 꺼내고, 결혼식 갈 때도 안 신는 구두를 집었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타고 면접 장소로 이동했고,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약속 시각인 저녁 7시, 나의 첫 ‘대표님’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화는 풍성하게 이어졌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많은 업체들 중에서 왜 우리 업체를 지원했냐고. 지원한 업체 중 당신네만 회신을 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회사 면접 다니며 이런 '지원동기' 거짓말 숱하게 해 봤기에 일고의 죄책감도 없이 답했다.
"**업체 사진의 톤과 시선이 좋고, 블로그에서 느껴지는 고객에 대한 진심이 잘 느껴진다. 나도 이 일을 순전히 돈벌이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와 고객이 둘 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들고 싶다"라고.
조금 더 질문이 이어지다가, 그녀는 한 호흡을 삼키며 꽤 중요한 질문을 할 거라는 암시를 미리 준 뒤에 이내 말을 꺼냈다.
"그러면 혹시 찍고 싶은 사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할 때 그것을 잘 참을 수 있으세요?, 지금 보내주신 포트폴리오에는 웨딩 사진은 없고, 풍경이나 조금 예술적인 사진이 주를 이뤄서요"
행간은 이렇다.
“여기선 당신이 원하는 사진만 찍을 수는 없어요. 신부가 원하는, 고객이 원하는 사진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작품은 예술 사진에서 하고, 웨딩은 상업 사진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포트폴리오도 없죠. 생각보다 지루한 일일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질문을 받고 갑자기 어디서 떠올랐는지. 나는 내 특기인 "먼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말을 불러오기"를 시작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미드필더 포지션을요. 미드필더는요, 빛나야 한다기보다 연결해야 하는 포지션이에요. 멋진 패스를 몇 번 넣는 것보다, 공을 잃지 않고 잘 분배하는 게 더 중요하죠. 만약 한 경기에서 100번 패스를 한다면, 좋은 미드필더는 그중 80~90개는 팀을 위한 안정적인 패스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10~20개, 거기서 개성 있는, 조금은 공격적인 패스를 넣는 거죠.”
“좋은 웨딩 스냅 작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 촬영에 1,000장을 찍는다면 그중 800~900장은 초점 정확하고, 구도 안정적인, 고객이 만족할 만한 사진이어야 해요. 하지만 나머지 100~200장은 작가로서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그만큼의 자기표현도 하지 못하면 고객이 저희를 선택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요? 다 똑같은 사진은 재미없잖아요”
한참을 답변을 듣던 대표가 고개를 들더니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자기가 들은 답변 중에 최고였다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다. "신랑 신부가 퇴장하는데 핀 조명이 엇나간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와 같은 상황에 대한 질문, "예식장 조명이 노랗다면 어떤 설정으로 찍을까요?"와 같은 카메라 기능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사진 그 자체에 대한 실력과 지식보단 예식이라는 특수한 현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과 센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면접이 그렇다. 스펙이 비슷비슷하면 결국 남는 건 '이 사람이랑 같이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인상이다. 같은 프로젝트를 해도, 점심을 같이 먹어도, 퇴근 후 톡방에서 대화해도. 결국 마지막 한 끗은 스펙 차이가 아니라 동료로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관계 같은 것.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것. 그게 소위 말하는 "인성 면접"아닌가.
그렇게 나는 다년간의 면접 경험으로 첫 웨딩 스냅 면접을 치렀다. 대표는 “오랜만에 물건을 만났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곧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 대표는 몰랐겠지.
그 면접이 내가 그 업체에 있던 동안 내 최고점이었다는 걸.
훗날 날 해고하면서 "허위 면접 당했다"싶었을 거다.
오브포토그라피라는 브랜드로 웨딩, 본식, 데이트 스냅 등 각종 사진을 촬영 중에 있습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무료 촬영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관심 있으시면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