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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월급과 셔터 사이

본식 웨딩 스냅을 하기로 결심한 날

by 청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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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처음 카메라를 들었다. 아일랜드로 떠난 어학연수에서다. 나는 영어보단 사진 찍기에 부지런했다. 사각형 프레임으로 세상을 썰어내는 게 좋았다. 조작법은 뒤로한 채 양껏 사진을 찍었다. 간혹 운 좋게 건지는 몇 장의 사진에 혼자 들떴다. 더 욕심이 생겼다. 나름 개성 있는 구도와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사진 실력도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아일랜드는 초록빛이 예쁜 나라다. 자연은 아름다웠고, 모든 풍경은 기분 좋게 낯설었다. 정규 수업도 없고, 출근할 곳도 없는 유예의 시간. 말하자면 세상과 잠시 정지된 방학 같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참 여유로웠다. 요즘 힘든 일이 생기면, "어쩌면 2017년 내가 보낸 행복에 대한 할부금 영수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귀국 후에도 꾸준히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빈도도, 열정도 아일랜드만 못했다. 바빠진 대학생활, 권태로운 풍경, 영감을 주지 못하는 일상. 결국 2019년, 중고나라에 카메라를 내놓았다. 졸업, 인턴, 취업까지. 촬영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조금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게 우선순위를 채갔다.


2021년,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진과는 전혀 무관한 곳.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모니터만 들여다본다. 거북이가 된 것처럼 모니터와 이마는 계속 가까워지고, 하루 동안 보는 가장 다채로운 색은 윈도우 10 배경 사진이었다. 시간마다 사막, 바다, 별로 바뀌는 형형색색 윈도우 풍경이 사무실에 꼼짝없이 앉아있는 내 모습과 더 대비됐다. 취향, 사진, 창작, ‘쿨하고 멋진 일’ 같은 단어들은 점점 내 일상과 멀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더운 여름날 야구장 외야석으로 높게 뜬 안타 공을 보며 "나는 소설을 쓸 거다"란 결심을 했다고 하던가. 나도 그랬다. 그 뜬금없음은 동일했지만 내 장소는 조금 덜 멋졌다.


어느 추운 1월 겨울, 난방기만 돌아가는 사무실. 엑셀로 원료와 부자재 가용성을 점검하고, 요의도 없는데 그저 한숨 돌리러 가는 화장실 행 복도에서, 불현듯 그런 고민과 결심을 했다.

아 이런 거 말고. 정말 호구지책 마련하고, 언젠가 부동산 사기 위해 하는 이깟 시시한 일 말고. 내 자아라고는 손톱만큼도 들어가지 않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품이 되는 일 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흥분되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그 전조 없던 욕망은 예고도 없이 나를 덮쳤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업무. 억눌려 해소되지 않는 창작 욕구, 그리고 어쩌면 이런 종류의 일을 60살까지 해야 한다는 막막함.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일상. 그와 동시에 작지만 꾸준히 자기 세계를 다져가는 주변인들 모습과 비교까지. 그 모든 감정이 복도 한가운데서 불쑥 흘러넘쳤다. 화산처럼.


나는 가려던 화장실을 지나쳐 정수기로 향한 뒤에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개운하지 않은 게 몸의 갈증은 아닌 듯하다. 냉수를 들이켜면서, 새로운 일을 결심했다. 내 일을 하겠다고. 회사 밖에서 내 기술을 가지고 전문가가 되겠다고. 다음번 이 화산이 또 찾아오면 그때는 주저함 없이 떠날 수 있는 무기를 가져보겠다고.


그날 퇴근 후, 나는 곧장 인터넷을 켜서 카메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2023년 1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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