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본식 웨딩 스냅 촬영기
그때 대표는 몰랐겠지.
그 면접이 내가 그 업체에 있던 동안 내 최고점이었다는 걸.
훗날 날 해고하면서 "허위 면접 당했다"싶었을 거다.
며칠 뒤 함께 일해보자는 합격 카톡이 왔다. 대표는 촬영 가능 날짜를 물었다. 나는 모든 주말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대표는 처음 몇 회는 페이가 없을 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8~10회 정도 촬영 후 결과물을 보고 평가한 뒤, 그 이후부터 정식 서브 스케줄과 페이를 지급하겠다고. 좋다고 답했다. 내가 먼저 제안했던 방식이다. 게다가 배우는 시기에 한 마디라도 아쉬운 소리 덧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빨리 마음껏 촬영해 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거 열정 페이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지.
하지만 그건 정규직, 4대 보험이 갖춰진 근로 계약서 위에서 하는 말이다. 계약서 밖 세계는 다르다. 대표입장에선 고객에게 팔 수 없는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그저 고생했다고 돈을 줄 수는 없다. 잘 팔리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돈을 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못 버는 것. 심플하지만 공정한 규칙이다. 그런 계약서 밖의 조건을 기대하고 이 업계에 들어온 것도 있고.
사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돈을 지불하면서라도 배우고 싶었다. 예쁜 사진과 팔리는 사진은 어떤 게 다른지 궁금했고, 신랑 신부는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실제 식장에서는 어떤 구도로 담을지 훔치고 싶었다.
8에서 10회면 개월수로 치면 약 3개월 정도다. 새삼 사진으로 생계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회사 일에 회의감을 느꼈던 날 뒷 배 없이 바로 퇴사했더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여유는 사치였을 테니까.
촬영 날짜가 잡혔다. 토요일 오전 식이었다. 촬영 삼일 전 줌으로 미팅을 가졌다. 카메라 설정, 신랑 신부를 응대하는 법 등 기본적인 것을 설명해 줬다. 입장 컷은 중앙 정면이지만, 서브인 만큼 버진로드 옆에서 촬영해야 한다는 점. 생각보다 수직 수평이 어긋나는 일이 많으니 늘 올곧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 실내에서 리드선을 찾아라, 하객 맞이는 85mm로 조리개 최대 개방하여 찍어야 한다와 같은 걸 설명해 줬다. 중간고사 하루 전 날 10분 만에 시험 범위를 말하는 선생님 말씀받아 적는 학생처럼 옮겨 적었다.
"필수 컷"이라는 개념도 처음 배웠다. 말 그대로 꼭 남겨야 하는 종류의 사진이다. 예를 들어 양가 부모님께 인사할 때 포옹하는 사진, 반지 교환, 화촉점화, 혼인 서약과 같은 사진들. 그렇게 꼭 남겨야 하는 구도가 약 40장은 됐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앨범에 들어가는 40~60장 정도의 사진에 꼭 필요한 풍경이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 왔지만 결국 그건 바다 풍경, 골목 감성, 도시 야경 같은 장르였다. 그러니 나는 내 사진의 화자이자 독자였다. 심지어 결과물이 별로여도, 그 과정에서 나만 즐거웠대도 상관없었다. 어디 줄 사진이 아니니까.
그런데 결혼식 장에선 달랐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품"이다. 작가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의미가 남겨져 있던 고객이 만족하는 게 중요하다. 찍는 사람보다, 찍히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본식 웨딩 스냅사진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나는 쌩신입이었다. 대표는 나름 경력직으로 뽑았겠지만.
첫 촬영날이 밝았다. 두근두근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식장에 들어섰다.
배터리를 두 개 꽉 채워 넣고, 일찍 도착해 홀을 한 바퀴 돌았다. 신랑 신부가 도착했고, 촬영이 시작됐다. 근데 이상하다. 분명 카메라는 내 손에 있는데, 아무 장면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신랑이 어디서 입장하는지, 조명은 어떻게 터지는지, 수평 수직은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삼분할은 어디 갔는지. 사격 훈련장에서 처음 총기 기능 고장을 맞은 이등병 같았다. 얼타기 바빴다.
줄줄 외웠던 필수 컷 리스트는 순서 없이 엉켜버렸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에선 식은땀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예전부터 "잘 못은 걸릴 때까지 잘못이 아니다"라는 뒤틀리고 왜곡된 신념을 가지고 살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잘못된 사진이 남겨지는 것이니 도망칠 곳이 없다. 나는 꾸역꾸역 맘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결할 방법은 찾지 못한 채 촬영을 계속했다.
눈앞의 신랑 신부는 리허설이 아니다. 리마인드 웨딩 아니고서야 결혼식은 재촬영이 없다. 단 한 번뿐이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나를 더 압박했다. 전쟁터에서 피격될까 총구만 위로 내놓고 난사하는 병사처럼, 검지가 아플 만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조리개도, 셔터 스피드도, 노출도, 아무것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나만) 전쟁 같은 식이 끝난 뒤, 대표가 와서 “카메라 좀 보여줄 수 있을까요?” 했다. 그녀는 내 미러리스 뷰어를 한참 들여다봤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당혹감이 묻어났다. 촬영장에서 눈치가 빠르다고 어필했건만, 나는 고객보다 대표 눈치 보기 바빴다.
좋은 소설가는 많이 보고, 적게 쓴다고 하던가. 나는 그날 적게 보고 많이 셔터를 누른 사람이었다.
그다음 주 평일, 대표는 (일단은) 다음번 예식 일정을 한 번 더 공유해 줬다.
오브포토그라피라는 브랜드로 웨딩, 본식, 데이트 스냅 등 각종 사진을 촬영 중에 있습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무료 촬영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관심 있으시면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